똑, 똑, 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에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덜 깬 상태에서도 짐작 하나쯤 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오밤중에 문도 아니고 창문을 두드릴만한 인물은 말입니다.


예상하는 인물이 정말 맞을까요⋯⋯.
맞다면 어째서?



요괴는 두껍지 않은 원피스 차림입니다.
아마 잠옷인 거겠죠.
그것까진 시간대와 다를 게 없지만⋯⋯.
어째서인지 귀와 꼬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요괴임을 숨길 생각 하나 없는 것처럼요.

⋯⋯.


언제 여나 했네.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어?






싫으면 그대로 창문 닫고 자라.


당신이 손을 잡아오자, 요괴는 손을 그대로 잡아 끌어 올립니다.

창문 밖으로,
혹은 허공으로⋯⋯.
"원우야, 내 뒤 너머를 봐."
그 말에 이끌려 너머를 바라보면⋯⋯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죠?
평범한 주택가는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거대한 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은하수를 새하얗게 반짝이며 거리를 수놓습니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길 위를 걷는 건⋯
백 마리 남짓의 요괴 떼입니다.
혹시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자, 이 비현실적인 광경이 벌어지는 오늘을 우선 서술해 봅시다.
오늘은 굳이 특별한 날이라고 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축제를 지나, 장장 3년을 허비했던 시험까지 넘어,
그 뒤의 큰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지나던 어느 날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상을 보냈을까요?

(물론 이런 농담 안 좋아하더라, 왤까⋯⋯.)
그런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네.

당신은 그런 한가운데를 살아갑니다.
여기는 지구,
평범한 인계(⼈界),
아름답고, 평화롭고, 무료한 세계의 당신은 언제나와 다를 것이 없는 일상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어떤 변주는 있는 걸까요.
숨은 붙인 채 살아가던 당신에게,
지금, 수많은 등불의 행렬이⋯⋯.
질질 끌고 있는 꿈을 깨우듯, 요괴가 가볍게 소리를 냅니다.





뭐어, 그건 됐어. 어쨌든 말이야, 왜 인계에서 이런 게 펼쳐지는지는 나도 당장은 모르겠지만⋯⋯.
반가울 만한 얼굴들이 있어.
그건 분명⋯ 당신도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요괴들의 행렬에 말이야.


가고 싶어?



자신을 내려다본다면 다르진 않을 겁니다. 가면 하나 없는 것 빼고는요.


(궁시렁.)

네 앞에도 요괴 하나 있는데, 요괴가 인간 잡아먹는 꼴 보여줘? (눈 가늘어짐.)


그래서 안 갈 거야? 안 갈 거냐고.


그러니 창문이 더 가까웠을 뿐이야.


흠, 귀도 달아둘까? 아니면 꼬리? (옆을 빙그르르 돌듯 걸으며 살핀다. 그러다 손을 뻗어서⋯⋯.)
이것부터 필요하겠네. (제 손의 등불을 쥐여준다.)






예전에는 동생 같다고 좋아했으면서. (그런 적 있진 않다.)





⋯⋯
그렇게 진짜 요괴 하나와 가짜 요괴 하나가 백귀야행에 합류합니다.
우글우글한 요괴들은 각자 등불을 든 채 시시덕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곳곳에 소리가 울리지만, 이미 요괴의 축제를 겪어본 이상 그것만은 못하죠.
그나저나 이상한 점은⋯
이렇게 많은 이들의 행렬치고는 비교적 소리가 울리지 않습니다.
그 행렬 속에서 걸음을 옮기던 인간과 요괴는 익숙한 존재들을 발견합니다.

요괴들의 행렬에서 발견할 것이 요괴 뿐이지 더 있겠냐만 말입니다. 그래도 둘 모두에게 익숙한 이유는⋯⋯
눈에 들어온 대상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일 겁니다.
타타, 미호, 쿠라마, 이채, 그리고⋯⋯
희란을 말입니다.
그 요괴가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아니, 정말 익숙하다고 하는 게 맞을까요?
몇몇은 당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보다 훨씬 더 어려 보입니다.
100개에 달하는 등불이 어둠 속에서 선을 그리며 이동합니다.




아~, 아⋯ 음~.
반갑네.
(끝.)

너 날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농담 겸 시비에 가깝다.)


물론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흠⋯ 내버려 두면 영영 되돌리지 못할지도?


(가벼운 손짓으로 저 자신을 가리킨다.) 역시 나려나? 미래를 맡고 있으니까.
⋯⋯뭐, 농담이야.

역시 그런건가⋯⋯. (농담에 납득하고 있음.)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진 말도록 해. 그렇다 해도 웬만하면 과거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날 알아보지 않는 게 좋겠지. (손을 뻗어 가면을 툭 두드린다.) 그러니 마주치면 대화는 네가 하도록 해. 그럴 경우 난 조금 피해있을 거니까.

알아보면 자신이 모르고 있던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애들은 원래 순진하잖아, 모르는 것도 많을 거고. 나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숨겨둔 가족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걸. (내가? 대화를?) 겁 먹고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어릴 때 공략 포인트 좀 짚어줄래?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기엔 어릴 적 가정 환경 사정이 영 순탄치 않아서 말이야. 얼마나 어릴 적인지 감이 안 잡히는데⋯ (관찰하듯 행렬 너머에 시선을 고정했다.) 뭐든 겁을 먹지는 않을 거고, 공략 포인트는 물리지 않게 조심하도록.

(도전! 어깨 툭툭 건드림.)

돌아본 낯의 표정은 딱 보아도 샐쭉하네요. 손에 든 등은 바닥에 끌릴 듯 말듯 아슬아슬한 경계를 가르고 있습니다.


지금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 거야? 같이 가도 돼?

흠, 어리면 그냥 말 놓아도 되지 않나? 하긴.
나이 별로 안 많은 요괴야, 지금 시공간이 뒤틀렸잖아! 그것도 몰라?



이름 같은 걸 잘 외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
⋯⋯너, 그 선생이 보낸 첩자냐? 요괴들 꾀는 솜씨를 보면 일리가 있군.

좋으면 좋다고 해.

어, 그런다고 그 선생에 대한 의심 같은 걸 그만둘 생각 없거든? 그만 포기하시지.
어린 요괴들을 데려다가 뭘 가르쳐서 뭘 시키려고 모으냔 말이야. 내가 어리게 둔 채로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구슬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나 본데 천만에 말씀이야.
악, 생각해보니 시간이 꼬이기 전엔 근처에 있었는데 또 안 보이네. (제 머리카락 잡아당긴다.) 아오, 누가 잡아가준 거면 좋겠는데!

요괴의 삶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 (시비 거는 건 아닌데 그렇게 들림.)

그리운 걸 기다리는 것보단 나을 걸. 만나지 못해도 실망하진 않을 테니까. 요괴의 삶이란 그런 거지. (무던한 어조.)

그 미운 사람이 그리워지고, 그걸 기다리게 되면 포기할 거야?

(흠.) 뒤의 물음은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 그리운 게 미워진 적밖에 없거든. 하지만 그리움에 포기라는 단어는 안 어울리는 것 같네.

그리워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건 미련하네, 어른이 되면 좀 고쳐지려나. (이마 툭⋯.)

바보 아니야? 포기하는 게 더 미련한 거야. 해야 할 건 포기가 아니라 배웅인 거라고. 이것도 모르다니 정말 미련한 요괴야. (툭 치면 살짝 밀린다.)

그나저나, 같이 다니는 요괴 없으면 내 일행과 함께 다니지 않을래? (저~기 있는 희란 가리킴.)

다 됐고, 역시 수상해. 수상한 짓 하려고 데려가봤자 지금 이대로면 다 망하니까 행동 조심하도록. (가는 주겠단 소리임. 가리킨 쪽으로 성큼 걸어나간다. 그것도 누구는 빠트린 채로⋯⋯.)
한참 어린 요괴가 당신을 두고 앞서나갈 때, 삽시간에 주위의 풍경이 바뀝니다.
검은 우주처럼 일렁이던 배경은 초록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새가 곳곳에 모여 지저귑니다.
향긋한 풀 내음과 함께 산속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보이는 건 선명한 붉은 색의 토리이.
그리고 회색 계단이 연이어 주르륵 늘어집니다.
요괴들의 대열은 흐트러지지 읺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평지를 걷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이 끝없는 계단은 다릅니다.
이건 인간에겐 아무래도 힘들 텐데요⋯⋯.

고원우, 건강 판정 진행해주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주변 풍경은 평화롭고 잔잔합니다.
인간의 비유로는 삼림욕을 하는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계단의 양옆은 섬세한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조각상들이 계단을 오르는 당신을 반깁니다.




어쩔 수 없지!

계속 나랑 있을 거야? 일행 안 보이잖아!




고원우, 듣기 판정 진행해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다른 요괴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당신 말고는 유일하게 옆의 작은 요괴가 눈살을 찌푸립니다.






잠시 후, 오른편에서 수풀을 헤치고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고원우, 지능 판정 진행해주세요.

기준치: | 40/20/8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 남자는 그 중에서도 '신관'의 차림새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등불이 없습니다. 저벅저벅 걸어들어온 신관은 정확히 당신 일행의 곁에서 함께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지나가던 17마리의 요괴가 들음.)

아니면 뭐, 거, 그⋯⋯
어린애 외관 취향? 있니?



먼저 갈 길을 가는 당신을 누군가 붙잡습니다.
신관: 걷다 보면 힘들지 않으신가요. 뒤에 일행 분도 계신데 조금 쉬엄쉬엄 걸어가지요.


(입 다물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다.)
신관: 아하하⋯ 그게 눈에 그렇게 보이던가요.

저 앞의 어떤 바보 요괴는 요괴 맞는지 들고도 영 모르는 것 같지만.



신관: 아하하, 설마 몰랐겠습니까. 여러분의 등불은 노여움을 가라앉혀 세계를 돌려달라 비는 의미인데요.

먼저 가더니, 마저 먼저 가시지 왜 또 말을 거시나. (흥. 흥!)

이 분이 천천히 가라고 하셔서 너 봐주는 거야.



신관: 하하, 두 분 다 조금만 늦춰주시지요.

신관: 저는 이 대열에 끝까지 함께할 수 없으니, 조금의 배려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신관: 저는 이 신사를 벗어날 수 없는 몸이니까요. 이쪽 작은 요괴 분은 짐작하시는 눈치시지만 말입니다.
저도 마음만 같아서는 함께 가고 싶군요⋯⋯.

네, 조심할게요.
신관: 이 길의 끝에 '그 사람'이 있을 게 분명한데, 저는 갈 수가 없다니⋯⋯.


그게 누구인지 아시는 건지요?
신관: 제게는 평생을 약속한 정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목숨은 이미 끊긴 채고,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몸이죠.
정인은 제 죽음을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알아요. 그 사람이라면 언제고 그럴 것이라는 걸⋯⋯.


기준치: | 40/20/8 |
굴림: | 3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물론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는 성향은 아니라지만, 워낙 충격적인 일이 있으면 기억이 깊게 박힌다죠.
우리가 정말로 처음 만났던 때의 축제 말입니다.
살면서 그렇게 들려서, 공주님처럼 안기고, 뭔가 계속 떨어지고⋯⋯.
그 강렬한 기억 속에서 함께 박혀있는 하나의 연극이 있습니다.
연극, 신목의 시 말이에요.
핸드아웃 : 신목의 시를 재공개합니다.
이 남자의 사연이 연극의 내용과 과할 만큼 유사하지 않던가요?

신관: 하, (쓰게 웃었다.) 하다못해 제가 죽었다는 사실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더는 기다리지 말라고, 나는 다른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겠다고,
어디든 매어있지 말라고⋯⋯.

우리가 그 사람에게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신관: 염치가 없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런 길이라도 열린 건 처음이에요.


저기요, 저쪽 수상한 요괴가 어떻게든 전해주고 싶대요.

신관: (고개를 돌린다. 화색을 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언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를 잴 수 없어요.
부탁입니다. 제 정인에게 이걸 전달해주세요.
여러분은 확신하지 못하실 지도 모르지만, 저는 직감합니다.

신관: 당신들은 결국 제 정인에게 향할 거예요. 이렇게 뒤엉킨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제 바람이라고 생각하질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절 한 번 믿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무게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겠죠.
그리움, 애정, 희망, 기대,
⋯⋯혹은 다른 어떤 것일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당신에게 낯설지 않은 시선이 느껴집니다. 어떤 요괴의 시선을 당신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옆이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에 있더라도요.
아마도, 높은 확률로, 다르지 않은 것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 사이 행렬은 계단의 끝으로 도달합니다.
신관은 대열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계단의 끝에 섭니다.
계단의 끝, 그리고도 가장 끝자락에서 신관은 요괴들을 지켜봅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요괴들이 토리이를 통과하는 모습을,
저 너머로 떠나는 모습을,
자신의 '어떤 것'이 함께 이 신사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마지막 요괴가 토리이를 통과할 때까지.
그 마지막의 요괴는 당신이 보았다 해도 낯설지 않을 요괴였습니다.
분홍빛의, 두 갈래로 나뉜 꼬리를 지닌⋯⋯
'어떤 이야기'를 함께 아는 요괴 말입니다.
주변 풍경이 다시 변화합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당신에게 무척 익숙합니다.
그야 본인이 사는 동네니까요.
다만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적막만이 이 공간을 감돌고 있습니다.
당신을 제외한 이 세계의 주민들은 어디로 흘러가 버린 걸까요?
행렬은 계속하여 전진합니다.
주택가를 지나칠 무렵이면, 몇몇 어린 요괴들이 창문을 깨며 장난을 치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저거, 계속 남아 있을까요⋯?

그러고 보면 원우네 집도 가까워져 오네요.
과연 이 뽑기에 본인의 집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고원우, 행운 판정 진행해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상냥하게 길에서 짱돌 쥐여줌.)




보통의 요괴면 이런 데는 처음일 텐데 말이지.

여긴⋯ 좀 터가 안 좋잖아? 잘못 건드리면 벌 받는 곳이다, 이거지. 옆집은 아니고. (진지한 척.) 그러니까 던지려면 옆집에 던지도록 해.

보통 기물 부수지 말라고 하는 게 제대로 된 어른인 거야, 바보야. 나이 많다는 거 진짜 거짓말이 틀림 없어⋯⋯.
⋯아무튼 내가 본 건, 돌을 던지고 싶단 게 아니라 그쪽이 묘하게 여기가 익숙해 보여서였다고.


⋯⋯저거 뭔 거 같은데? (거리의 자동차 가리킴.)

잘 만들었다.


우리도 축제 때 뭐 설치하고 하잖아, 비슷한 거지.





그러면 저건 감옥인가? (학교다.)

(학생의 감인가?)



본인 말로는 조금 더 고즈넉한 곳이라고 하던데, 거짓말도 잘 한다니까. (투덜투덜투덜.)


있잖아, 요괴야. (그러고 보면 이름도 안 물었네. 찰나의 깨달음은 뒤로 미룬다.) 네가 먹을 만큼 먹은 요괴라고 치면, 뭐 하나 대답해줄 수 있어?





그냥 냅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흠.)

만약 그 논리면 모든 걸 바로잡았을 때 그 인간은 우리 세계에 없으려나. (소리에 힘이 빠진다.)



행렬은 순조롭게 이어집니다.
요괴들은 불이 꺼진 도심 한 가운데를 지납니다.
붉은 불이 켜진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널목을 건너갑니다.

아주 사악하네요. 물론 인간의 법칙일 뿐이지만요.
깜빡, 깜빡.
강한 요기를 감지라도 한 건지⋯
행렬이 지나가는 곳의 가로등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점멸합니다.
시멘트는 독기에 녹아버립니다.
가로수는 생명을 잃고 시듭니다.
백귀야행이 옮겨가는 장소마다 엉망으로 변해갑니다.

요괴 상인: 자, 간식이요, 간식!
저렴한 값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버팀.)

여러 요괴들이 간식거리를 물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뭔데?!)

누가 떨궜는데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안쪽에는 짤랑이는 소리가 나네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끝에 뭐가 있을까⋯. 짐작이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오래 안 지나서 당신도 알게 될 테니까 발설은 안 할래.
뭐에 그렇게 심통이 났나 모르겠지만 옛날의 날 잘 챙겨주는 게 좋을 걸? 이렇게 두고 와서야 어른이라도 믿어주겠어? (작은 웃음소리.)



나 갈게! 끝에서 기다릴 테니까.




그래도 배불러서 기분은 좋지?

아차, 누가 있었나? (고개 완전 돌림.)

알았어, 미안하다고⋯⋯.
얼마 안 남았대, 같이 가자.

다음엔 작별 인사 정도는 하도록 해. (먼저 앞서 간다.)

검은 하늘, 어두침침한 거리.
빼꼭한 요괴들의 행렬.
행렬이 길을 걷는다면, 길에는 끝이 있을 겁니다.
무엇에 도달한다고 해도요.
조금의 시간이 더 흐릅니다.
잇따르는 걸음의 끝에, 행렬은 마침내 도달합니다.
길의 끝에 말입니다.
또 다시 새빨간 토리이가 보입니다.
토리이 너머에는 신사가 요괴들을 반깁니다.
아까처럼 길게 늘어지는 돌계단은 없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토리이가 거꾸로 뒤집힌 채 매달려 있다는 것이죠.


기준치: | 50/25/10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뒤집힌 것은 토리이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풍경이 반대로 뒤집혀 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름다운 연못이 보입니다.
연못 아래로는 붉은 다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잘 관리된 연꽃과 비단잉어가 돋보입니다.
푸른 정원은 수려하게 생명을 뽑냅니다.
뒤집혀 있음에도 밤하늘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늘은 고요합니다.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
요괴들이 걸음을 멈춥니다.
들고 다니던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자, 기이한 일이 발생합니다.
등불이 제 멋대로 떠오릅니다.
마치 하늘 위로 연을 날려 보내듯 말입니다.
등불을 내려놓는 요괴들은 그 광경을 당연하다는 듯 바라봅니다.


(내려두자⋯⋯.)



내려놓는다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지. 무엇이든 위에서 아래로 향하길 마련이니까.
비록 떨어지는 곳이 하늘이라고 해도 말이야⋯⋯.
여기는 그런 장소야. 무엇을 놓는다 해도 하늘로 향하는 곳.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뭘 해야 하는 줄 알았어.
⋯⋯그쪽, 알고 있어? (등을 쥔 채, 아직까지도 놓지 않았다.)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거네.




(미안.)

바람은 등불에 담겨 무언가에게 닿길 마련이지. 이곳이 길의 끝이고, 무언가 놓으면 하늘로, 어쩌면 그 위의 어디론가 떨어져 내린다면⋯⋯.
어디로든 닿을 거라고. 길을 잃지 않고, 바라는 끝으로.
별개로 이 세상엔 반딧불이 없더라. 그러니 이렇게라도 길을 찾아야지. 걔넨 다 하늘로 간 건가? 대신 하늘이 반짝이던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렇다면 그쪽은 맡은 것도 책임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말해준 거야!

(소원에 대해서 캐물어 보진 않음.)

계속 들고 있어도 찾아 전해줄 자신 있어?









등불은 떠올라 밤하늘을 향해갑니다.
하늘로 올라갈수록 등불은 작아져갑니다.
차츰차츰 멀어져, 작은 빛 한 줄기로 변해갑니다.
그렇게 모든 등은 차례로 사라져갑니다.
하늘로,
그 위로,
어딘가를 향해서.
모든 요괴들이 그 광경을 함께 지켜봅니다.
어린 요괴도, 요괴를 가장한 인간 하나도,

행렬 어딘가의 어린 요괴를 빼다박은 요괴 하나도 말입니다.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

나쁘지 않았어, 이런 일도.
어쩌면⋯⋯


이상한 생각이 들려고 했는데 분위기 잘 깼다, 깼어.


때마침,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는 점점 거세져, 하늘에서는 비가 내립니다.
비는 단순하게 그치지 않고 폭우로 쏟아집니다.
요괴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비를 피할 곳을 찾습니다.
그 사이에서,
당신은 눈에 담습니다.
빗속에 홀로 서서 편지를 읽는 여인을요.
얇은 전통 복식을 입고 있는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몇 번이고 편지를 읽는 것처럼 보입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적힌 내용을 눈으로 쓰다듬습니다.
당신은 그 여인을 보고 있으나, 알지 못합니다.
그는 웃고 있던가요?
혹은 울고 있던가요.
닿을 리 없는 목소리가 점차 흩어집니다.
마지막의 문장은 끝도 맺지 못한 채,
차가운 빗소리에 묻힙니다.
비는 바닥을 적십니다.
비는 세계를 녹입니다.
모든 것이 허상이었던 것처럼.
뒤틀린 혼란은 가라앉습니다, 시공간은 제 자리를 찾아갑니다.
백 마리 남짓의 요괴들이 하나씩 사라져갑니다.
모두들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처럼.


그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게 누구인지 알 것 같네. (여인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다.)



작별 인사는 꼭 하겠다고 했으니까 약속 지키려고 말하는 거야.

있잖아, 마지막에 저 여인이 하려던 말은 뭘까?
편지엔 뭐라고 적혀 있었을까⋯.


역시 잘 모르겠네⋯⋯.
당신, 거짓말은 참 못 하는구나. (고개를 돌린다.)
⋯알고 있었어.
그래도, 약속은 잘 지키네⋯⋯.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흐리게 웃는다. 손을 뻗어 가면을 툭 건드린다. 빗물에 휩쓸려 자연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질 때.)
잘 가.
있잖아, 다음에 다시 보게 된다면⋯
이름을 알려줘.
경계는 흐려지고 흐려져서 눈앞을 뿌옇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듣습니다.
"고마워."
⋯겹쳐진 채로 울리는 두 목소리를.

난 변하지 않을 테니까, 알아보기도 쉬울 걸!
한 목소리는 굉장히 슬픈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이건 결코 나쁜 결말이 아닐 겁니다.
끝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
당신이 다시 정신을 차리면, 처음 눈을 떴던 침대의 위입니다.
비록 옷은 여전히 축제의 복장이지만요.

창 한켠에 요괴가 여전히 가면을 쓴 채로 앉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난 변하지 않을 테니까, 알아보기도 쉬울 걸.
⋯⋯틀린 말은 아니네? (가면을 옆으로 민다.)

다녀왔다. (벌떡.)

있잖아,
다음에 다시 보게 됐으니 이름을 알려줘.

이제는 알고 있으면서, 좀 낯 간지럽다는 생각 안 해?
안 알려줄 거야?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는 이제 알 것 같네.
그건 말이야⋯⋯

다시 만나면 분명,
기필코 기쁠 테니까요.
ED 1. 재회의 기약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