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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에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덜 깬 상태에서도 짐작 하나쯤 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오밤중에 문도 아니고 창문을 두드릴만한 인물은 말입니다.
고원우:⋯⋯. (또?)
M:그런데 기이하게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지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예상하는 인물이 정말 맞을까요⋯⋯.
맞다면 어째서?
고원우:(창문 너머를 본다.)
M:창문 너머를 보면, 예상과 다르지 않은 인물이 보입니다.
고원우:그런데 왜 매번 창문이야?!
요괴는 두껍지 않은 원피스 차림입니다.
아마 잠옷인 거겠죠.
그것까진 시간대와 다를 게 없지만⋯⋯.
어째서인지 귀와 꼬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요괴임을 숨길 생각 하나 없는 것처럼요.
고원우:(응?)
⋯⋯.
고원우:(창문 벌컥.)
희란:(한쪽 손을 가볍게 흔든다.) 여어.
언제 여나 했네.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어?
고원우:아니, 그쪽이라고 생각했어. 이 불친절함⋯⋯.
희란:그러면서 왜 그렇게 늦장을 부렸대. (남은 한쪽 손에는 등불이 들려 있다.)
고원우:불친절에 대한 반항심이지, 그건⋯ 뭐야?
희란:글쎄⋯ 뭘까? (비어있는 쪽의 손을 내민다.) 궁금하면 잡아 보던지.
고원우:등불을? (손 본 거 맞음.)
희란:손을, 바보야! (삐죽한 낯.)
싫으면 그대로 창문 닫고 자라.
고원우:설명이 늘 부족하다는 생각 안해봤어? (손 잡음⋯.)
희란:글쎄, 어떨까⋯⋯.
당신이 손을 잡아오자, 요괴는 손을 그대로 잡아 끌어 올립니다.
고원우:어디로 가는 건데? 뭔데?!
창문 밖으로,
혹은 허공으로⋯⋯.
"원우야, 내 뒤 너머를 봐."
그 말에 이끌려 너머를 바라보면⋯⋯
고원우:(⋯너머에 뭐가 있는데?)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죠?
평범한 주택가는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거대한 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은하수를 새하얗게 반짝이며 거리를 수놓습니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길 위를 걷는 건⋯
백 마리 남짓의 요괴 떼입니다.
혹시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자, 이 비현실적인 광경이 벌어지는 오늘을 우선 서술해 봅시다.
오늘은 굳이 특별한 날이라고 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축제를 지나, 장장 3년을 허비했던 시험까지 넘어,
그 뒤의 큰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지나던 어느 날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M: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나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상을 보냈을까요?
고원우:(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루를 보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뭐 그런 식으로. 하마터면 지루해서 죽을 뻔 했지만, 그나마 옆에 있는 요괴 덕분에 숨은 붙였다!)
(물론 이런 농담 안 좋아하더라, 왤까⋯⋯.)
그런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네.
M: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고, 오늘과 내일을 덧대도 그대로 맞아 떨어질 것 같은 날들의 한가운데.
당신은 그런 한가운데를 살아갑니다.
여기는 지구,
평범한 인계(⼈界),
아름답고, 평화롭고, 무료한 세계의 당신은 언제나와 다를 것이 없는 일상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어떤 변주는 있는 걸까요.
숨은 붙인 채 살아가던 당신에게,
지금, 수많은 등불의 행렬이⋯⋯.
질질 끌고 있는 꿈을 깨우듯, 요괴가 가볍게 소리를 냅니다.
희란:이건 백귀야행이야.
고원우:(어려운 단어군.)
희란:네가 이런 단어를 알아먹으려나 몰라. (너무 큰 무시를 하는 중.)
고원우:사람 무시하네. (어떻게 알았지?)
희란:모를 게 뻔할 것 같던데, 아닌가? (맞겠지.)
뭐어, 그건 됐어. 어쨌든 말이야, 왜 인계에서 이런 게 펼쳐지는지는 나도 당장은 모르겠지만⋯⋯.
반가울 만한 얼굴들이 있어.
그건 분명⋯ 당신도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
M:핸드아웃 :: 백귀야행百鬼夜行을 공개합니다.
희란:그러니 같이 가지 않을래?
요괴들의 행렬에 말이야.
고원우:내가 가도 돼?
희란:가고 싶다면.
가고 싶어?
고원우:위협 당하면?
희란:그러지 않도록 가면 하나쯤 씌워줄 텐데, 뭐. (두 손가락을 맞부딪치더니 섬광이 번쩍인다.)
M:눈을 찌르는 섬광이 잦아들면, 앞의 요괴는 어느 새 고양이 가면을 쓰고, 무언가의 전통 의복을 입은 채 서 있습니다.
자신을 내려다본다면 다르진 않을 겁니다. 가면 하나 없는 것 빼고는요.
희란:(남은 손 하나에 똑같은 고양이 가면을 머리 위에 얹어준다.) 옛다, 겁이 많아서 원.
고원우:인간이 요괴 사냥하는 행렬을 만들어서 돌아다닌다고 치자, 당당하게 다닐 수 있어?
(궁시렁.)
희란:요괴가 인간 사냥하러 행렬로 걸어다니냐?
네 앞에도 요괴 하나 있는데, 요괴가 인간 잡아먹는 꼴 보여줘? (눈 가늘어짐.)
고원우:지금까지 참느라 수고 많았고 한 입 해. (팔 내민다.)
희란:겁을 먹을 거면 먹지 말라고라도 말하라고. (얄미워서 살짝 깨물고서 놓아준다.)
그래서 안 갈 거야? 안 갈 거냐고.
고원우:알았어, 가자. 그런데 다음부터는 창문 말고 문으로 좀⋯⋯.
희란:문이든 창문이든 요괴는 인간이 허락 안 해주면 못 들어간다고!
그러니 창문이 더 가까웠을 뿐이야.
고원우:되게 이상한 법칙이네.
희란:최소한의 협정이지. 자, 갈 거면 가면 제대로 써.
흠, 귀도 달아둘까? 아니면 꼬리? (옆을 빙그르르 돌듯 걸으며 살핀다. 그러다 손을 뻗어서⋯⋯.)
이것부터 필요하겠네. (제 손의 등불을 쥐여준다.)
고원우:아니, 그냥 이것만 쓰고 있을게. (가면 제대로 쓴 후 등불을 쥔다.) 됐다.
희란:예전에는 잘 달고 다녔으면서.
고원우:이젠 아니야. (나도 어른!)
희란:왜 아니야? 어른이 되니 고양이는 싫니? (빤.)
고원우:이제 귀랑 꼬리 다는 게 싫은거지!
희란:나랑 똑같은 거 다는 건데도?
예전에는 동생 같다고 좋아했으면서. (그런 적 있진 않다.)
고원우:왜 혼자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거야.
희란:비슷한 소리 했잖아.
고원우:출발 안 해? (콕콕콕콕.)
희란:이제 무시하겠다 이거지. 그래, 보여줄 거 있으니까 가자. (먼저 성큼 걸어간다.)
고원우:(그런데 뭘 보여주고 싶다는 걸까? 따라감.)
⋯⋯
그렇게 진짜 요괴 하나와 가짜 요괴 하나가 백귀야행에 합류합니다.
우글우글한 요괴들은 각자 등불을 든 채 시시덕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곳곳에 소리가 울리지만, 이미 요괴의 축제를 겪어본 이상 그것만은 못하죠.
그나저나 이상한 점은⋯
이렇게 많은 이들의 행렬치고는 비교적 소리가 울리지 않습니다.
그 행렬 속에서 걸음을 옮기던 인간과 요괴는 익숙한 존재들을 발견합니다.
M:둘 모두에게 익숙할 대상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요괴들의 행렬에서 발견할 것이 요괴 뿐이지 더 있겠냐만 말입니다. 그래도 둘 모두에게 익숙한 이유는⋯⋯
눈에 들어온 대상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일 겁니다.
타타, 미호, 쿠라마, 이채, 그리고⋯⋯
희란을 말입니다.
그 요괴가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아니, 정말 익숙하다고 하는 게 맞을까요?
몇몇은 당신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보다 훨씬 더 어려 보입니다.
100개에 달하는 등불이 어둠 속에서 선을 그리며 이동합니다.
희란:어때, 내가 보여주고 싶던 건데.
고원우:응, 어릴 때도 귀엽네.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작군.)
희란:아니, 날 보라는 게 아니라고. 다른 것들은 안 반가워?
고원우:(0_0)
아~, 아⋯ 음~.
반갑네.
(끝.)
희란:하나도 안 반가운 반응.
너 날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농담 겸 시비에 가깝다.)
고원우:뭐,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시큰둥하게 주위 살핌.) 그런데 이거 괜찮은 거 맞아?
희란:아, 좀 귀여운 반응 안 나오니? (괜히 억울해졌다. 굳이 주위를 살피지도 않은 채로 짧은 숨 사이에 말을 잇는다.) 이계와 인계의 시공간이 뒤틀려서 과거의 우리가 현재랑 섞인 모양이야.
물론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흠⋯ 내버려 두면 영영 되돌리지 못할지도?
고원우:우리 사이에 왜 그런 반응을 기대해? (⋯?!) 영영 되돌리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데? 평생 둘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그런데 도플갱어는 마주치면 죽는다고 했는데. (논점 이탈.)
희란: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내가 좀 그런 것 좀 기대할 수 있지! (투덜투덜.) 되돌리지 못하면⋯⋯ 섞여보지 않아서 모르지. 하지만 과거가 미래와 섞이면 와야 할 미래가 어그러질 거고, 인간들의 논리로 따지면 죽는 건⋯⋯
(가벼운 손짓으로 저 자신을 가리킨다.) 역시 나려나? 미래를 맡고 있으니까.
⋯⋯뭐, 농담이야.
고원우:위기 상황을 함께 넘겼던 친구잖아, 아니야? (굳이 진짜와 가짜를 나눈다면 나를 알고 있는 쪽이 진짜겠지, 그렇지만 닮은 얼굴이 사라진다고 하니 영 기분이 미묘해진다. 적당히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을 텐데.)
역시 그런건가⋯⋯. (농담에 납득하고 있음.)
희란:한참 어린 게 자꾸 친구를 먹으려고 하고 있어. 이제 누나라고 안 부르니? (뻔뻔하다. 이렇게 뻔뻔할 만큼 태평한 낯이다. 무슨 자신이라도 있는 건지.)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진 말도록 해. 그렇다 해도 웬만하면 과거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날 알아보지 않는 게 좋겠지. (손을 뻗어 가면을 툭 두드린다.) 그러니 마주치면 대화는 네가 하도록 해. 그럴 경우 난 조금 피해있을 거니까.
고원우:누나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니⋯ 됐다. (저렇게 나오는 걸 보면 해를 심하게 끼치는 건 아니다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안심해도 되는 거겠지⋯⋯.)
알아보면 자신이 모르고 있던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애들은 원래 순진하잖아, 모르는 것도 많을 거고. 나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숨겨둔 가족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걸. (내가? 대화를?) 겁 먹고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어릴 때 공략 포인트 좀 짚어줄래?
희란:앤 무슨 말을 하다 말아? (잠시 바라보더니 으쓱이고 그만둔다.)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기엔 어릴 적 가정 환경 사정이 영 순탄치 않아서 말이야. 얼마나 어릴 적인지 감이 안 잡히는데⋯ (관찰하듯 행렬 너머에 시선을 고정했다.) 뭐든 겁을 먹지는 않을 거고, 공략 포인트는 물리지 않게 조심하도록.
고원우:요괴라는 거 말이지, 어릴 때는 동물적 특성이 좀 더 강한 건가? 입질을 한다거나 밥 그릇에 코를 박고 먹는다던가, 물 싫어하는 거 말이야. (일단 생각나는 아기 맹수들 특징 쭉 읊어봤음.) 애 상대하는 건 자신이 없어서 큰일이긴 한데⋯⋯.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보다 어렵겠어?' 자신감 가지고 접근하기로 한다.) 그럼 나 말 걸고 온다. 어디 먼저 가지 말고 기다려!
(도전! 어깨 툭툭 건드림.)
M:지금보다 앳된 낯의 어린 요괴가 뒤를 돌아봅니다.
돌아본 낯의 표정은 딱 보아도 샐쭉하네요. 손에 든 등은 바닥에 끌릴 듯 말듯 아슬아슬한 경계를 가르고 있습니다.
어린 희란:⋯⋯뭔데요? (익숙한 껄렁함.)
고원우:(다행이다, 어리다고 반응이 조금 더 무를 줄 알았는데 달라진 건 없구나. 긴장이 반 정도 풀렸다.)
지금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 거야? 같이 가도 돼?
어린 희란:⋯⋯그것도 몰라요? 체구는 나보다 큰데, 역시 어린가 보군요.
흠, 어리면 그냥 말 놓아도 되지 않나? 하긴.
나이 별로 안 많은 요괴야, 지금 시공간이 뒤틀렸잖아! 그것도 몰라?
고원우:무슨 소리야, 내가 너보다 한참 더 나이가 많은데. 삼촌이나 오빠라고 부르도록. (위협.) 그거야 알지. 그래서 이걸 해결하러 가는 중이었나~, 싶었다고.
어린 희란:한참 더 나이가 많다면서 오빠를 호칭 내에 놓는 그 자신감은 뭐지. 심리가 불순하다. (팽. 안 먹힘.) 흠⋯ 그러면 이 시공간을 누가 뒤틀었는지는 알고?
고원우:요괴한테 나이 차이가 무슨 소용이라고⋯⋯. (중얼중얼.) 잘 모르는데? 너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
이름 같은 걸 잘 외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어린 희란:그런 것 치고는 아까 오빠라고 부르라 했으면서. 나이 값을 못 하네. (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나 아니면 관심이 없다⋯⋯ 뭐하는 요괴지.
⋯⋯.
⋯⋯너, 그 선생이 보낸 첩자냐? 요괴들 꾀는 솜씨를 보면 일리가 있군.
고원우:방금 좀 흔들리긴 했나 봐? (ㅋㅋ)
좋으면 좋다고 해.
어린 희란:뻔뻔하게 이런 소리까지⋯⋯! (꼬리 팍 들림.)
어, 그런다고 그 선생에 대한 의심 같은 걸 그만둘 생각 없거든? 그만 포기하시지.
어린 요괴들을 데려다가 뭘 가르쳐서 뭘 시키려고 모으냔 말이야. 내가 어리게 둔 채로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구슬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나 본데 천만에 말씀이야.
악, 생각해보니 시간이 꼬이기 전엔 근처에 있었는데 또 안 보이네. (제 머리카락 잡아당긴다.) 아오, 누가 잡아가준 거면 좋겠는데!
고원우:미안한데 난 교육 같은 거라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그 선생인지 뭔지랑 아무 연관이 없지. 학교는 관심도 없고~. (이걸 잘됐다고 해, 운이 안 좋다고 해야 해?) 그렇게 나쁜 것만 바라게 되면 나중에 다~ 돌아온다? 미워하던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거나 그런 거. (ㅋㅋ)
요괴의 삶이라는 게 다 그렇잖아? (시비 거는 건 아닌데 그렇게 들림.)
어린 희란:⋯⋯그렇다고 학교에 관심이 없을 필요는 없는데. 학교라는 건 나쁘지 않은 제도란 말이지. 어떻게 가르치냐에 따라선 갈 곳 없는 요괴들을 인도할 수 있는⋯⋯ 아, 또 이러네! (이건 꼭 변호라도 하는 것 같잖아!) 초면에 이렇게 저주를 거는 법 있나 싶긴 한데⋯ 차라리 그게 더 낫지 않나?
그리운 걸 기다리는 것보단 나을 걸. 만나지 못해도 실망하진 않을 테니까. 요괴의 삶이란 그런 거지. (무던한 어조.)
고원우:갈 곳 없는 요괴들을 인도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난 잘 모르겠는데~, 사실 은근히 그 선생이라는 사람이 하는 일이 나쁘지 않다는 건 자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착한 '어린' 요괴네! (흐음⋯.)
그 미운 사람이 그리워지고, 그걸 기다리게 되면 포기할 거야?
어린 희란:그렇게 물을 수도 있다니 그쪽은 재수 없을 만큼 운이 좋은 요괴인가 보네. 이 세계에 한 치 앞도 가늠하지 못하는 요괴가 얼마나 많은 줄 모르다니. 한 걸음을 디뎌도, 뒤로 물러서도 가도 좋은 곳 하나 없는 그 감각은⋯⋯. (뒤의 말은 그대로 무시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냐, 그쪽은 운이 좋아서 다행이다. 모르는 게 나아.
(흠.) 뒤의 물음은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 그리운 게 미워진 적밖에 없거든. 하지만 그리움에 포기라는 단어는 안 어울리는 것 같네.
고원우:모르는 게 낫다고 말하면 오히려 더 궁금해 지는 거 몰라? (자신은 어디까지나 요괴를 흉내내는 인간이고, 요괴의 마음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웃어 넘기기만 한다.) 이건 비밀인데, 난 사실 운 좋은 삶 같은 건 바란 적 없다? 그런 삶보다는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때가 좋아. 매 순간 내가 보고 들으며 느끼는 게 강렬했으면 한다고. (가볍게 어깨 으쓱인다. 그래, 우린 처음 만났을 때부터 평행선이었지⋯⋯.)
그리워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건 미련하네, 어른이 되면 좀 고쳐지려나. (이마 툭⋯.)
어린 희란:성격이 안 좋네. 이 경우엔 나쁘다는 게 더 어울리겠어!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라본다. 이건 정말 우스운 소리야.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말은 있잖아, 꼭 말이지. (정적이 인다. 무언가를 고르기라도 하는 것 마냥.) 당신에겐, 제대로 살아있는 체감을 가지게 하는 것 하나 없는 것 같잖아. 바라는 것 하나 없는 거야? 어떤 존재라도 그런 것 하나로라도 삶을 거머쥐는데.
바보 아니야? 포기하는 게 더 미련한 거야. 해야 할 건 포기가 아니라 배웅인 거라고. 이것도 모르다니 정말 미련한 요괴야. (툭 치면 살짝 밀린다.)
고원우: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은 요괴도 있다면 물 흐르듯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 같은 요괴도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하더라. 음⋯ 다양성? 그래, 그런 걸 존중해야 한다 이거지. (익숙한 구석이 있는 대화다, 자연스럽게 넘겨보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좀 살아있는 것 같고 좋아. 새로운 일이 생겼잖아? 우리도 처음 만났고. (어라, 밀렸다.)
그나저나, 같이 다니는 요괴 없으면 내 일행과 함께 다니지 않을래? (저~기 있는 희란 가리킴.)
희란:그런 건 쿠라마 할멈도 안 할 소리인데 나이 값도 못하는 요괴가 어디서. (발로 툭 친다. 다른 표현으로 한 대 걷어찼다. 밀린 걸 갚는 거다.)
다 됐고, 역시 수상해. 수상한 짓 하려고 데려가봤자 지금 이대로면 다 망하니까 행동 조심하도록. (가는 주겠단 소리임. 가리킨 쪽으로 성큼 걸어나간다. 그것도 누구는 빠트린 채로⋯⋯.)
한참 어린 요괴가 당신을 두고 앞서나갈 때, 삽시간에 주위의 풍경이 바뀝니다.
검은 우주처럼 일렁이던 배경은 초록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새가 곳곳에 모여 지저귑니다.
향긋한 풀 내음과 함께 산속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보이는 건 선명한 붉은 색의 토리이.
그리고 회색 계단이 연이어 주르륵 늘어집니다.
요괴들의 대열은 흐트러지지 읺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평지를 걷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이 끝없는 계단은 다릅니다.
이건 인간에겐 아무래도 힘들 텐데요⋯⋯.
M:고원우는 계단을 251칸 올라갑니다.
고원우, 건강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
건강
기준치:70/35/14
굴림:64
판정결과:보통 성공
어린 희란:(잘도 오르는 거 너머에서 내려다봄.)
주변 풍경은 평화롭고 잔잔합니다.
인간의 비유로는 삼림욕을 하는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계단의 양옆은 섬세한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조각상들이 계단을 오르는 당신을 반깁니다.
고원우:(운동하는 것 같네~!)
어린 희란:나이 먹은 값 못 하는 요괴 씨, 아까 가리킨 요괴가 그 사이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희란:(정확히는 내뺀 거다. 네가 감당해라 고원우.)
고원우:아, 원래 그 요괴가 낯을 좀 가리고 수줍음이 많아.
어쩔 수 없지!
어린 희란:뭘 어쩔 수 없지야, 어쩔 수 없지는.
계속 나랑 있을 거야? 일행 안 보이잖아!
고원우:알아서 따라오고 있겠지. (느긋하게 올라감⋯.)
어린 희란:초면의 요괴 때문에 일행을 내팽겨치다니, 불량하기까지. (궁시렁⋯.)
고원우:인기 많아서 좋겠네~. (ㅎㅎ)
M: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걷습니다.
고원우, 듣기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
듣기
기준치:60/30/12
굴림:49
판정결과:보통 성공
M:푸스스, 수풀을 제치고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른 요괴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당신 말고는 유일하게 옆의 작은 요괴가 눈살을 찌푸립니다.
고원우:무슨 소리 안 들렸어?
어린 희란:⋯⋯귀는 밝나 보네?
고원우:귀'도' 밝은 거지.
어린 희란:이상할 만큼 적막하고 범상치 않은 기척이야. (무시!)
고원우:귀가 어둡구나?
어린 희란:그래, 귀'만' 밝은 바보 요괴야.
잠시 후, 오른편에서 수풀을 헤치고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M:베일로 얼굴을 가린 자는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자태를 지녔습니다.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품위가 넘치며, 고아한 분위기를 태생적으로 지닌 인물입니다.
고원우, 지능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
지능
기준치:40/20/8
굴림:2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M:당신에게도 꽤 익숙할 거예요. 신사나 사당에서 일하는 자들의 차림새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요괴들과 얽히며 볼 만큼 보지 않았나요.
이 남자는 그 중에서도 '신관'의 차림새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는 등불이 없습니다. 저벅저벅 걸어들어온 신관은 정확히 당신 일행의 곁에서 함께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고원우:⋯⋯냅둬도 되겠지? (수군수군.)
어린 희란:⋯⋯왜, 나한테 한 것처럼 말이라도 걸어보시지. (소곤소곤.)
고원우:난 너한테 관심 있다니까? (갑.분.고)
(지나가던 17마리의 요괴가 들음.)
어린 희란:아 자꾸 관심 있다는데 초면에 헛소리 말라니까?
아니면 뭐, 거, 그⋯⋯
어린애 외관 취향? 있니?
고원우:(이건 좀 심했다고 생각해서 버리고 슝 감;)
어린 희란:(황당하네⋯⋯. 갈 거면 가라. 혼자 제 속도로 터벅터벅 계속 걸음;)
고원우:(그렇게 둘은 1분 동안 따로 이동하게 되는데⋯.)
먼저 갈 길을 가는 당신을 누군가 붙잡습니다.
신관: 걷다 보면 힘들지 않으신가요. 뒤에 일행 분도 계신데 조금 쉬엄쉬엄 걸어가지요.
고원우:싸워서요. (누구야! 아⋯ 실망⋯ 아~.)
어린 희란:(조금 뒤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신관 님, 등불을 들지 않으셨네요. 아니면 들지 못하시는 건가.
(입 다물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다.)
신관: 아하하⋯ 그게 눈에 그렇게 보이던가요.
어린 희란:그도 그럴 게, 당연하죠. 이 등불은 시공간을 뒤튼 자에게 바치는 공물이니까.
저 앞의 어떤 바보 요괴는 요괴 맞는지 들고도 영 모르는 것 같지만.
고원우:저런 식으로 말해서 싸웠어요, 애가 말을 참 못됐게 하죠. (흑흑.)
어린 희란:모르면 바보인 걸 모르는 것처럼 구니까 바보라 하지! (흥.)
고원우:그래도 예전에는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요~. (호응 원하는 눈으로 신관 봄.)
신관: 아하하, 설마 몰랐겠습니까. 여러분의 등불은 노여움을 가라앉혀 세계를 돌려달라 비는 의미인데요.
어린 희란:우리가 또 언제 봤다고 귀여운 맛이래. 말 맞춰서 해라, 좀!
먼저 가더니, 마저 먼저 가시지 왜 또 말을 거시나. (흥. 흥!)
고원우:흠, 이런 게 그런 뜻이⋯⋯. (등불 들고 쳐다봄.)
이 분이 천천히 가라고 하셔서 너 봐주는 거야.
어린 희란:그럼 내가 빨리 가고 말지. (걸음 빨라짐.)
고원우:(같이 빨라짐.)
어린 희란:아, 천천히 가라 했다며!
신관: 하하, 두 분 다 조금만 늦춰주시지요.
고원우:(헉헉. 우리 이제 어디까지 왔어?)
신관: 저는 이 대열에 끝까지 함께할 수 없으니, 조금의 배려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린 희란:(흠. 1/3 정도 왔다.)
신관: 저는 이 신사를 벗어날 수 없는 몸이니까요. 이쪽 작은 요괴 분은 짐작하시는 눈치시지만 말입니다.
저도 마음만 같아서는 함께 가고 싶군요⋯⋯.
고원우:⋯⋯. ('옆에서 봤으면 잔소리 했겠지⋯.')
네, 조심할게요.
신관: 이 길의 끝에 '그 사람'이 있을 게 분명한데, 저는 갈 수가 없다니⋯⋯.
고원우:그 사람?
어린 희란:저기, 저희가 길의 끝에서 찾는 건 이 시간을 뒤섞은 인물인데요.
그게 누구인지 아시는 건지요?
신관: 제게는 평생을 약속한 정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목숨은 이미 끊긴 채고,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몸이죠.
 정인은 제 죽음을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알아요. 그 사람이라면 언제고 그럴 것이라는 걸⋯⋯.
M:고원우, 지능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
지능
기준치:40/20/8
굴림:34
판정결과:보통 성공
M:이 이야기는 당신에게 몹시 익숙하게 들립니다.
물론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는 성향은 아니라지만, 워낙 충격적인 일이 있으면 기억이 깊게 박힌다죠.
우리가 정말로 처음 만났던 때의 축제 말입니다.
살면서 그렇게 들려서, 공주님처럼 안기고, 뭔가 계속 떨어지고⋯⋯.
그 강렬한 기억 속에서 함께 박혀있는 하나의 연극이 있습니다.
연극, 신목의 시 말이에요.
핸드아웃 : 신목의 시를 재공개합니다.
이 남자의 사연이 연극의 내용과 과할 만큼 유사하지 않던가요?
고원우:(미묘하게 신경 쓰임⋯)
신관: 하, (쓰게 웃었다.) 하다못해 제가 죽었다는 사실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더는 기다리지 말라고, 나는 다른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겠다고,
 어디든 매어있지 말라고⋯⋯.
어린 희란:⋯⋯그래서 우리를 붙잡은 건가요?
우리가 그 사람에게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신관: 염치가 없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런 길이라도 열린 건 처음이에요.
고원우:⋯⋯어떻게든 전해주겠다고 말해봐. (쿡쿡 찌름.)
어린 희란: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본인이 말하면 되잖아!
저기요, 저쪽 수상한 요괴가 어떻게든 전해주고 싶대요.
고원우:난 이런 약속 같은 거 안 한다고⋯!
신관: (고개를 돌린다. 화색을 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언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를 잴 수 없어요.
부탁입니다. 제 정인에게 이걸 전달해주세요.
여러분은 확신하지 못하실 지도 모르지만, 저는 직감합니다.
고원우:(떨떠름하게 받음. 뭔데?)
신관: 당신들은 결국 제 정인에게 향할 거예요. 이렇게 뒤엉킨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제 바람이라고 생각하질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절 한 번 믿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M:받아든 종이봉투는 한없이 가볍습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무게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겠죠.
그리움, 애정, 희망, 기대,
⋯⋯혹은 다른 어떤 것일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당신에게 낯설지 않은 시선이 느껴집니다. 어떤 요괴의 시선을 당신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옆이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에 있더라도요.
아마도, 높은 확률로, 다르지 않은 것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 사이 행렬은 계단의 끝으로 도달합니다.
신관은 대열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계단의 끝에 섭니다.
계단의 끝, 그리고도 가장 끝자락에서 신관은 요괴들을 지켜봅니다.
고원우:(보고 있으니 조심스럽게 들고 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요괴들이 토리이를 통과하는 모습을,
저 너머로 떠나는 모습을,
자신의 '어떤 것'이 함께 이 신사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마지막 요괴가 토리이를 통과할 때까지.
그 마지막의 요괴는 당신이 보았다 해도 낯설지 않을 요괴였습니다.
분홍빛의, 두 갈래로 나뉜 꼬리를 지닌⋯⋯
'어떤 이야기'를 함께 아는 요괴 말입니다.
───────  ───────
주변 풍경이 다시 변화합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당신에게 무척 익숙합니다.
그야 본인이 사는 동네니까요.
다만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적막만이 이 공간을 감돌고 있습니다.
당신을 제외한 이 세계의 주민들은 어디로 흘러가 버린 걸까요?
행렬은 계속하여 전진합니다.
주택가를 지나칠 무렵이면, 몇몇 어린 요괴들이 창문을 깨며 장난을 치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저거, 계속 남아 있을까요⋯?
M:깨지는 집의 창문들은 뽑기라도 돌리듯 규칙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원우네 집도 가까워져 오네요.
과연 이 뽑기에 본인의 집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고원우, 행운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
기준치:60/30/12
굴림:1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M:본인의 집은 멀쩡하지만⋯ 지금 바로 옆옆집 창문 두 개가 깨졌습니다.
고원우:(모르는 척.)
어린 희란:(빤한 시선 보냄.)
고원우:왜, 너도 돌 던질래?
(상냥하게 길에서 짱돌 쥐여줌.)
M:어느덧 본인의 집 앞입니다.
어린 희란:(황당하게 짱돌 쥠.) 아니, 뭔⋯ 뭔 권장이냐, 이거?
고원우:잠깐, 이 집은 안 돼. (옆집 가리킴.) 저긴 괜찮아.
어린 희란:(다시 빤히 본다.) 왜 거긴 괜찮고 여긴 안 되는데?
보통의 요괴면 이런 데는 처음일 텐데 말이지.
고원우:⋯⋯. (뭐라고 둘러대야 할 지 잠깐 고민하다가⋯.)
여긴⋯ 좀 터가 안 좋잖아? 잘못 건드리면 벌 받는 곳이다, 이거지. 옆집은 아니고. (진지한 척.) 그러니까 던지려면 옆집에 던지도록 해.
어린 희란:그쪽도 진짜 제정신은 아닌 요괴다.
보통 기물 부수지 말라고 하는 게 제대로 된 어른인 거야, 바보야. 나이 많다는 거 진짜 거짓말이 틀림 없어⋯⋯.
⋯아무튼 내가 본 건, 돌을 던지고 싶단 게 아니라 그쪽이 묘하게 여기가 익숙해 보여서였다고.
고원우:진짜 우리가 사는 곳이라면 말렸겠지, 하지만 그것도 아니잖아? (어깨 으쓱.) 복잡하게 따지지 마. 여기가 익숙하게 보이는 건⋯ 뭐⋯. (짧은 고민.) 우리가 사는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
어린 희란:(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 고개를 돌린다.) 흐름, 그렇단 말이지.
⋯⋯저거 뭔 거 같은데? (거리의 자동차 가리킴.)
고원우:흠, 장식용?
잘 만들었다.
어린 희란:뭐 장식하는 것 같은데!
고원우:골목 장식용 아니야?
우리도 축제 때 뭐 설치하고 하잖아, 비슷한 거지.
어린 희란:그러면 저거는? (거리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붙은 아이스크림 판넬이다.)
고원우:알록달록하네. (단순한 감상.)
어린 희란:아, 뭐인 거 같냐고.
고원우: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쇠 전법.)
어린 희란:흐음⋯ (총총 얼마인가 더 걸어간다.)
그러면 저건 감옥인가? (학교다.)
고원우:오, 그런가. (맞긴 해. 그런데 좀 애매하기도 해. 일단 다들 그렇게 느끼긴 해.)
(학생의 감인가?)
어린 희란:진짜 뭔가 감에 거슬리는데⋯⋯. (인상 확 찌푸린 채다.)
고원우:(아무것도 모르는 얼굴.)
어린 희란:영 삭막한 곳이야. 그 인간은 이런 데에 살고 있던 건가⋯⋯.
본인 말로는 조금 더 고즈넉한 곳이라고 하던데, 거짓말도 잘 한다니까. (투덜투덜투덜.)
고원우:(⋯⋯이 도시를 좋아하던 사람이 넘어간 걸까? 잠시 고개를 기울이다가⋯.) 어딘가 그런 장소도 있나 보지. 너무 신경 쓰진 마.
어린 희란:신경을 어떻게 안 쓰니? 어찌 되었든 내 두 눈으로 구경하는 건데. (숨을 잠시 늘인다.)
있잖아, 요괴야. (그러고 보면 이름도 안 물었네. 찰나의 깨달음은 뒤로 미룬다.) 네가 먹을 만큼 먹은 요괴라고 치면, 뭐 하나 대답해줄 수 있어?
고원우:그래도 그 사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기쁘지 않아? 나라면 그럴 것 같은데. (익숙한 도시에 발 들인 이방인들을 슬쩍 둘러보다가⋯.) 왜? 또 뭐가 궁금한데. (=어려서 그런지 질문이 많네, 귀엽다!)
어린 희란:그렇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니까. 그쪽은 뭐 이해하는 거 좋아하나? (물론 질문은 이런 게 아니다. 잠시 뜸을 들였다.) 이 시간과 공간의 축이 바로잡혀도 하나쯤 여기에 남길 수 있는 방법 없을까?
고원우: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때가 훨씬 더 많으니까⋯ 기회가 생긴다면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지? (나름 신중하게 생각해서 답을 준다⋯.) 어디에든 흔적을 많이 남겨 놓으면 하나 정도는 여기 남지 않겠어?
어린 희란:그것 참 좋겠네. 난 애초에 이해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 (손가락 끝으로 제 옷자락을 잡는다.) ⋯그게 아니라, 인간을 하나 남기고 싶다는 거야.
고원우:⋯⋯원래 인간을 여기 데려올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을까? 별 다른 노력 하지 않더라도. 그런데 그 사람 사라졌다며.
그냥 냅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흠.)
어린 희란:여기서 어디 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섞인 이상 여기에 있을 테니까. 돌아온 김에 아예 보내주고 싶은 거지. 딱히 말은 못 들었지만 그 선생도 가족은 있었을 거고, 아무튼⋯⋯. (뭔가 더 늘어놓으려다 그만뒀다.)
만약 그 논리면 모든 걸 바로잡았을 때 그 인간은 우리 세계에 없으려나. (소리에 힘이 빠진다.)
고원우:응, 그렇지 않겠어? 본인이 그 세계에 쭉 남고 싶어하지 않는 이상. (역시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군⋯.) 떠나는 게 싫다면 가지 말라고 해, 늦지 않게. 찾는 거 도와줄까?
어린 희란:아니! (시선을 피한다.) 그럴 필요 없어. 이상한 걸 도와준다고 하네. 그쪽은 일행도 안 찾나, 자꾸 처음 보는 요괴한테 얼쩡대고⋯⋯. (변명 몇 마디를 끝으로 뛰듯이 앞서나간다.)
고원우:내 일행도 어른이니까 알아서 오고 있겠지, 오히려 나 없다고 좋아할 거 같은데⋯⋯. (졸졸 따라간다.)
행렬은 순조롭게 이어집니다.
요괴들은 불이 꺼진 도심 한 가운데를 지납니다.
붉은 불이 켜진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널목을 건너갑니다.
고원우:(범법행위군.)
아주 사악하네요. 물론 인간의 법칙일 뿐이지만요.
깜빡, 깜빡.
강한 요기를 감지라도 한 건지⋯
행렬이 지나가는 곳의 가로등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점멸합니다.
시멘트는 독기에 녹아버립니다.
가로수는 생명을 잃고 시듭니다.
백귀야행이 옮겨가는 장소마다 엉망으로 변해갑니다.
M:행렬의 속도가 조금씩 더뎌질 무렵, 행렬에 있던 요괴 중 몇이 가판대를 펼쳐들고 나섭니다.
요괴 상인: 자, 간식이요, 간식!
 저렴한 값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M:대부분이 도마뱀 구이나 메뚜기 튀김 같은 것이지만, 그 사이사이 약과나 사과 사탕과 같은 주전부리도 함께 보입니다.
고원우:(음⋯ 저런 거 먹으면 난 못 돌아가는 거 아냐? 안 사먹는다.)
(버팀.)
M: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여러 요괴들이 간식거리를 물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어린 희란:(자연스럽게 사탕 한 개 사서 들었다.)
고원우:(귀엽군.)
어린 희란:너는 안 먹어? 돈이 없니? (사과 한 입 베어 먹음.)
고원우:안 먹고 싶어서 안 사먹는다, 왜? 그런 건 애나 먹는 거야. (ㅋㅋ)
어린 희란:흠, 정말? (사탕 내밀어봄.)
고원우:(잘 참음.)
어린 희란:(내민 채로 있다.) 정말로? 혼자 굶게? 계속 가야 할 텐데도?
고원우:괜찮다니까. oO(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맛있는 거 실컷 먹자⋯.)
어린 희란:신경을 써줘도 뭐래. (사탕 한 입 더 문다.)
M:그때, 머리 위로 복주머니 하나가 떨어집니다.
고원우:(응?)
(뭔데?!)
M:글쎄요?
누가 떨궜는데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안쪽에는 짤랑이는 소리가 나네요.
고원우:(열어봄.)
M:엽전 뭉치 사이로 쪽지 하나가 접혀져 있습니다.
고원우:(펼쳐본다.)
'그 먹성에 뭐 안 사먹는 거 돈이 없어서 그렇지? 당신이 요괴 돈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 굶고 다니지 마라.'
M:대충 누가 준 건지 알 만도 하네요.
고원우:아니, 누가 보면 내가 못 먹어서 굶어 죽기 직전인 줄 알겠네. (아 어이없어)
어린 희란:정말 돈이 없어서 굶는 거였다고? (그거 다 봤다.)
고원우:(옆에 있는 아기에게 사탕 6개, 꼬치 9개 사서 쥐여주고 나머지는 주위 요괴들한테 뿌린다. 그러고 빠르게 저벅저벅 걸어감. 이 요괴 어디 있어!!)
어린 희란:아, 이야기를 하지! 내가 사탕 하나 못 사줄⋯⋯ 이거 뭔데?! (우뚝.)
M:고원우, 행운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
기준치:60/30/12
굴림:8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M:당신이 앞서 나가는 사이, 뒷쪽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있습니다.
희란:혼자 또 왜 나가? 밥 먹으랬더니 또 왜 심통이야.
고원우:누구누구가 나 못 먹어서 굶어 죽은 줄 알길래 찾으러 왔지⋯⋯. (하.) 이 행렬은 언제까지 하는 거야? 끝에 뭐가 있는 거지?
희란:그대로 놔두면 굶어 죽을 것 같긴 하던데, 아니었어? (정말 진심으로 가득하다.)
끝에 뭐가 있을까⋯. 짐작이 아예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오래 안 지나서 당신도 알게 될 테니까 발설은 안 할래.
뭐에 그렇게 심통이 났나 모르겠지만 옛날의 날 잘 챙겨주는 게 좋을 걸? 이렇게 두고 와서야 어른이라도 믿어주겠어? (작은 웃음소리.)
고원우:그정도는 아니거든⋯⋯. (어린 요괴는 어디에 있지? 주위 살핀다.) 위험한 게 있는 건 아니지?
M:어린 요괴는 느린 걸음으로 저 뒤에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받은 주전부리들은 어린 요괴들에게 나눠주며 오느라 걸음이 늦춰지는 것 같군요.
희란:이러는 걸 보면 3할 정도는 아직 꼬맹이라니까. (손을 휘 흔든다.)
나 갈게! 끝에서 기다릴 테니까.
M:⋯⋯그러고는 시야에서 요괴가 사라집니다.
고원우:(가까이 접근⋯.) 많이 나눠줬네?
어린 희란:(시선 하나도 안 마주침.) 이게 누구야, 방금 나 버리고 간 어떤 요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고원우:(뒤끝 뭔데)
그래도 배불러서 기분은 좋지?
어린 희란:내가 사서도 배부를 수 있었는데 말이지.
아차, 누가 있었나? (고개 완전 돌림.)
고원우:(⋯⋯)
알았어, 미안하다고⋯⋯.
얼마 안 남았대, 같이 가자.
어린 희란:먼저 말 걸어놓고 간다는 소리도 없이 가는 거 완전 별로야. (뚱⋯.)
다음엔 작별 인사 정도는 하도록 해. (먼저 앞서 간다.)
고원우:그래그래, 인사는 꼭 할게. (졸졸⋯.)
검은 하늘, 어두침침한 거리.
빼꼭한 요괴들의 행렬.
행렬이 길을 걷는다면, 길에는 끝이 있을 겁니다.
무엇에 도달한다고 해도요.
조금의 시간이 더 흐릅니다.
잇따르는 걸음의 끝에, 행렬은 마침내 도달합니다.
길의 끝에 말입니다.
───────  ───────
또 다시 새빨간 토리이가 보입니다.
토리이 너머에는 신사가 요괴들을 반깁니다.
아까처럼 길게 늘어지는 돌계단은 없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토리이가 거꾸로 뒤집힌 채 매달려 있다는 것이죠.
M:고원우, 이성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
SAN Roll
기준치:50/25/10
굴림:18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뒤집힌 것은 토리이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풍경이 반대로 뒤집혀 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름다운 연못이 보입니다.
연못 아래로는 붉은 다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잘 관리된 연꽃과 비단잉어가 돋보입니다.
푸른 정원은 수려하게 생명을 뽑냅니다.
뒤집혀 있음에도 밤하늘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늘은 고요합니다.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
요괴들이 걸음을 멈춥니다.
들고 다니던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등불을 바닥에 내려놓자, 기이한 일이 발생합니다.
등불이 제 멋대로 떠오릅니다.
마치 하늘 위로 연을 날려 보내듯 말입니다.
등불을 내려놓는 요괴들은 그 광경을 당연하다는 듯 바라봅니다.
어린 희란:⋯등불, 내려둘 거지? (아직 손에 등불을 쥐고 있다.)
고원우:응,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내려두자⋯⋯.)
어린 희란:있잖아, 왜 등불이 떠오르는 줄 알아?
고원우:(이유를 말해보라는 듯 고개 까닥.)
어린 희란:등불은 사실 떨어지는 거야. 이곳은 뒤집혀 있으니까.
내려놓는다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지. 무엇이든 위에서 아래로 향하길 마련이니까.
비록 떨어지는 곳이 하늘이라고 해도 말이야⋯⋯.
여기는 그런 장소야. 무엇을 놓는다 해도 하늘로 향하는 곳.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뭘 해야 하는 줄 알았어.
⋯⋯그쪽, 알고 있어? (등을 쥔 채, 아직까지도 놓지 않았다.)
고원우:물론, 알고 있었지. (뻥.) 등불이 하늘로 향하는 것처럼, 당연한 법칙은 뒤틀려도 거스르지 못한다는 거구나.
있어야 할 곳으로 가는거네.
어린 희란:그런 거로 쳐 줄게, 물론 일단은. (등을 내려다 본다.) 그러면 우리가 왜 이 등불을 보내는 것인지도 기억해?
고원우: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찍어봄.)
어린 희란:⋯그러니까, 그래서 왜 등불이냐고!
고원우:⋯⋯기억 안 나네⋯.
(미안.)
어린 희란:등은 소원을 비는 의미잖아, 바보야!
바람은 등불에 담겨 무언가에게 닿길 마련이지. 이곳이 길의 끝이고, 무언가 놓으면 하늘로, 어쩌면 그 위의 어디론가 떨어져 내린다면⋯⋯.
어디로든 닿을 거라고. 길을 잃지 않고, 바라는 끝으로.
별개로 이 세상엔 반딧불이 없더라. 그러니 이렇게라도 길을 찾아야지. 걔넨 다 하늘로 간 건가? 대신 하늘이 반짝이던데.
고원우:넌 소원 뭐라고 빌 건데? 여기 하늘은 다 그래.
어린 희란:몰라, 이런 건 말하는 거 아니랬어. (결국 등을 내려둔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렇다면 그쪽은 맡은 것도 책임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말해준 거야!
고원우:아, 그⋯ 아까 받은 거? 그런데 이건 누구한테, 어떻게 줘야하는 거야?
(소원에 대해서 캐물어 보진 않음.)
어린 희란: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닿을 길 없는 것을 보내는 방법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잖아.
계속 들고 있어도 찾아 전해줄 자신 있어?
고원우:(등 안에 편지를 조심스럽게 넣는다. 자리가 좁다면 조금만 접어서⋯ 그리고 내려두자!)
어린 희란:그래도 편지에 뭐라고 적었는지 안 볼 정도의 친절함은 있네. (농담.)
고원우:남의 소원은 엿보는 거 아니래.
어린 희란:그런데 왜 나한테는 물어본 거지?
고원우: 습관처럼⋯⋯.
어린 희란:아무한테나 다 그러고 다니시나 보지⋯⋯.
고원우:궁금한 게 많아서 그래.
어린 희란:웃기시네.
M:등불을 내려놓자, 둘의 등불은 차례로 떠오릅니다.
등불은 떠올라 밤하늘을 향해갑니다.
하늘로 올라갈수록 등불은 작아져갑니다.
차츰차츰 멀어져, 작은 빛 한 줄기로 변해갑니다.
그렇게 모든 등은 차례로 사라져갑니다.
하늘로,
그 위로,
어딘가를 향해서.
모든 요괴들이 그 광경을 함께 지켜봅니다.
어린 요괴도, 요괴를 가장한 인간 하나도,
고원우:예쁘네.
행렬 어딘가의 어린 요괴를 빼다박은 요괴 하나도 말입니다.
어린 희란:결국 다 사라졌는데도?
고원우:내 머릿속에 남아있잖아.
어린 희란:기억은 결국 흐려질 걸.
고원우:흐려지면 좀 어때, 지금 이걸 본 것만으로 충분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린 희란:뭐⋯ 쉽게 잊진 못할 것 같긴 하네.
나쁘지 않았어, 이런 일도.
어쩌면⋯⋯
고원우:어른스럽게 구네⋯⋯.
어린 희란:나름 먹었다니까. 모습은 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려고 했는데 분위기 잘 깼다, 깼어.
고원우:슬퍼하는 것보다 낫잖아!
어린 희란:내가 뭘 슬퍼한다고!
때마침,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는 점점 거세져, 하늘에서는 비가 내립니다.
비는 단순하게 그치지 않고 폭우로 쏟아집니다.
요괴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비를 피할 곳을 찾습니다.
그 사이에서,
당신은 눈에 담습니다.
빗속에 홀로 서서 편지를 읽는 여인을요.
얇은 전통 복식을 입고 있는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몇 번이고 편지를 읽는 것처럼 보입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적힌 내용을 눈으로 쓰다듬습니다.
당신은 그 여인을 보고 있으나, 알지 못합니다.
그는 웃고 있던가요?
혹은 울고 있던가요.
"그래요, 당신은 줄곧 그곳에 있었군요.
아직도 절 잊지 않았어요.
저도 당신을 잊지 않았어요⋯⋯.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정말로 보고 싶었어요.
당신을 만날 수 있었으면 했어요.
이제 만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만, 만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러면, 당신을 기다렸던 만큼 나는⋯⋯"
닿을 리 없는 목소리가 점차 흩어집니다.
마지막의 문장은 끝도 맺지 못한 채,
차가운 빗소리에 묻힙니다.
비는 바닥을 적십니다.
비는 세계를 녹입니다.
모든 것이 허상이었던 것처럼.
뒤틀린 혼란은 가라앉습니다, 시공간은 제 자리를 찾아갑니다.
백 마리 남짓의 요괴들이 하나씩 사라져갑니다.
모두들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처럼.
고원우:돌아가나봐.
어린 희란:그러기 위해 있던 행렬이니까.
그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게 누구인지 알 것 같네. (여인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다.)
고원우:할 말이 있는데.
어린 희란:뭔데, 할 거면 해.
고원우:나 사실 요괴가 아니야. (심각.) 그래서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해.
작별 인사는 꼭 하겠다고 했으니까 약속 지키려고 말하는 거야.
어린 희란:⋯⋯.
있잖아, 마지막에 저 여인이 하려던 말은 뭘까?
편지엔 뭐라고 적혀 있었을까⋯.
고원우:보고 싶다고 쓰지 않았겠어?
어린 희란:기다린다는 게 그거로 충분하려나.
역시 잘 모르겠네⋯⋯.
당신, 거짓말은 참 못 하는구나. (고개를 돌린다.)
⋯알고 있었어.
그래도, 약속은 잘 지키네⋯⋯.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흐리게 웃는다. 손을 뻗어 가면을 툭 건드린다. 빗물에 휩쓸려 자연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질 때.)
잘 가.
있잖아, 다음에 다시 보게 된다면⋯
이름을 알려줘.
경계는 흐려지고 흐려져서 눈앞을 뿌옇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듣습니다.
"고마워."
⋯겹쳐진 채로 울리는 두 목소리를.
고원우:잘 지내, 또 만나자.
난 변하지 않을 테니까, 알아보기도 쉬울 걸!
한 목소리는 굉장히 슬픈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이건 결코 나쁜 결말이 아닐 겁니다.
끝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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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다시 정신을 차리면, 처음 눈을 떴던 침대의 위입니다.
비록 옷은 여전히 축제의 복장이지만요.
고원우: 꿈 꾼 것 같네⋯⋯.
창 한켠에 요괴가 여전히 가면을 쓴 채로 앉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희란:잘 지내, 또 만나자.
난 변하지 않을 테니까, 알아보기도 쉬울 걸.
⋯⋯틀린 말은 아니네? (가면을 옆으로 민다.)
고원우:거짓말은 안 해, 늘 그랬던 것처럼~.
다녀왔다. (벌떡.)
희란:말은 잘 해, 정말로.
있잖아,
다음에 다시 보게 됐으니 이름을 알려줘.
고원우: ⋯⋯.
이제는 알고 있으면서, 좀 낯 간지럽다는 생각 안 해?
안 알려줄 거야?
고원우:⋯⋯내 이름은 고원우야.
희란:그래, 원우야.
희란:편지에 뭐라고 적혀 있었을까는 여전히 모르겠어.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는 이제 알 것 같네.
그건 말이야⋯⋯
결국에는 기다림, 그리고 인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결말이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마침표는 다시 쉼표로 이어집니다.
오웬
끝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재회를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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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란 결국 새로운 시작.
그러니⋯⋯
블랑카
기나긴 여정이 끝나더라도,
새로운 시작에서 당신을,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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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희란, 고원우 생환. 이성 회복 1D10.
다시 만나면 분명,
기필코 기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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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2025. 08. 19
ED 1. 재회의 기약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