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학습 시간에 딴짓하지 말고. 선생님 자리에서는 다 보여!"
어느덧 일주일 뒤로 훌쩍 다가온 2학기 시험을 대비해, 몇몇 학생들은 고개를 숙여 공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고교생이 전부 수험에 집중할 리는 없잖아요?
공부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쪽지를 주고받거나, 제출하지 않은 전자기기를 만지작거리거나,
이런 수업 시간에는 보통 어떤 행동을 하나요?
고원우:(자율 학습 시간이니 남의 공부까지 방해할 마음은 없다. 그러니 말 거는 애들 무시하고 엎드려서 잠들 준비를⋯.)
엄포를 놓으신 것에 반해서 문학 선생님은 3분만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속 편히 잠들 준비나 할 수 있는 거겠지만요.
일단 꺼내두었던 교과서는 수업이 없으니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밋밋한 교복 소매 끄트머리에 달린 단추가 흰 형광등 빛을 반사합니다.
당신은 시일 고등학교 2학년 1반 학생입니다.
이 교실에는 차분하게 머리카락을 넘기며 수학 문제집을 풀어내는 반장도,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옆자리 급우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팔천구백 개의 다리를 가진 뱀이 떨어지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인어, 좀비, 식인 괴물, 외계인 역시 당신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마법이 눈앞에서 벌어진다거나 하는 일도 없죠.
어떤 세계에서는 당신이 온 세상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지도 모릅니다.
이 세계는 오로지 상식의 선 안에서만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됩니다.
이곳은 그렇기에 아름답고, 평화롭고, 무료한 세계입니다.
그런 세계애서, 지금 당신의 교과서 사이에 끼워둔 학습지 한 장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고원우:(느리게 손 뻗어서 줍는다. 진짜 딱 이것만 하고 자야지.)
M:당신이 학습지를 줍기 위해 몸을 숙이자, 들어오는 것은 동급생들의 다리부터 책상다리, 바닥에 이미 떨어진 다른 학습지들, 의자 다리, 뒤편의 사물함,
그리고 빛…….
빛?
깜빡, 깜빡. 이것은 정교하게 찍어낸 풍경 속에서 이질적으로 존재합니다.
어떤 형광등의 흰 빛도, 창문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의 조각도 아니죠.
이 빛은 청록색을 띄고 있습니다.
빛을 확인하면 당신은 이질감을 느낄까요?
고원우:⋯⋯저거 좀 이상하지 않나, 역시 어제 제대로 못 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빛을 뚫어지게 본다.)
대여섯 개의 푸르스름한 빛들이 간간히 점멸하며 닫힌 하나의 사물함 틈에서 새어 나옵니다.
어쩌면 이건 빛이 아니라······.
고원우, 교육/생물학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교육기준치: | 40/20/8 |
굴림: | 2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이건 알아보기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중학생 당시 통합과학 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죠.
반딧불이입니다. 분명, 수업시간에 배웠죠. 반딧불이는 딱정벌레목의 곤충으로, 보통 한여름, 특히 6월경 밤에 활동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10월이죠.
그리고 여기는 도심 한복판, 그것도 학교 사물함 안이고요.
사물함의 주인이 누군지는 확인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게 본인의 사물함이니까요.
M:그렇습니다. 6개월이 넘게 써왔으니 착각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시선을 집중하고 있으면, 사물함이 저절로 열립니다.
(과자, 사탕, 초콜릿 등등⋯⋯.)
무엇이든, 사물함 가득 넣어뒀던 모든 것이 사라져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새카만 구멍만이 남아 있고요.
블랙홀처럼 회오리치는 '그것'은 차츰차츰 주변을 검게 물들입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빛이 깜빡이고 있습니다.
M:고원우,
SAN 판정 진행해주세요.
(0/1) 고원우:SAN Roll기준치: | 50/25/10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고원우! 학습지가 떨어졌으면 얼른 줍고 얌전히 자습해라!"
그 사이 일어난 문학 선생님은 입가의 침을 눌러 닦고 꾸중합니다.
고원우:(안 돌아가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본다. 다른 사람들도 못 보는 것 같은데 진짜 꿈 아닐까?)
고원우:네, 선생님. 야, 너 웃지 마⋯⋯. (근처에서 웃고 있는 친구 어깨 툭 치며 자연스럽게 사물함 앞으로 간다. 문을 닫을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사물함 앞으로 가는 사이로도 당신을 둘러싼 풍경은 지나치게 비일상적입니다.
형광등 빛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교실 곳곳에 푸른 녹음의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닙니다.
사물함 내부의 구멍에서는 고요한 바람이 먼지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그 사이, 선생님도 눈치챈 사실이 하나 있나 봅니다.
급우B: 너는 네 대문도 아니고 사물함을 안 닫고 다니냐? (ㅋㅋ)
"고원우! 일어나서 사물함 문이나 닫고 와."
고원우:지능기준치: | 40/20/8 |
굴림: | 51 |
판정결과: | 실패 |
(맹⋯.)
M:이 사물함은 최근 부서진 사물함을 새로 교체한 것인데 말이죠.
고원우가 평소 별 생각이 없이 지낸다 해도 그 정도는 이런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사물함이 바뀔 때 뒷산의 나무 몇이 베어진 탓에 당시 자급자족이라도 한 거 아니냐는 농담이 돌아다닌 기억까지도 나긴 납니다.
뒷산에 뭐가 있었더라······.
역시 생각이 안 납니다.
그런 거 기억하고 다니지도 않죠?
비명과 함께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외치는 것도 같습니다.
볼펜의 끝으로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나, 종이가 팔랑거리는 작은 소리까지도.
지금 이 순간부터 벌어지는 일은 온전히······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잡아당기는 감각이 몰려옵니다.
어디서 울리는 것인지 모를 방울 소리만이 메아리치듯 울립니다.
"이, 일어나아, 이런 곳에서 자면 곤란해."
어둠 속에서 사흘간 아무것도 마시지 못한 것처럼 걸걸한 음성이 들립니다.
그런 것들은 머나먼 곳에서 희미하게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죽었다면 대체 이 고약한 냄새의 출처는 어디죠?
그런데 왜 눈을 떴음에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건가요?
고원우:하고 싶은 일이 많진 않았지만⋯⋯. (중얼⋯.)
고원우:(일단 일어나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M:일어나자 무언가 덜컹이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철퍽, 하는 소리도 들리고······.
그러자 바로 하나쯤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쓰레기통을 뒤집어쓰고 있잖아요?
M:얼굴 쪽에 손을 대어봐야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만 느껴지니 생각에 확신이 듭니다.
고원우:⋯⋯뭐야?! (쓰레기통 냅다 집어 던진다.)
M:쓰레기통이 바닥에 소리를 내며 내팽겨쳐집니다.
그제서야 시야에 주변 상황이 들어옵니다.
주변을 보니 지금은 저녁 무렵이네요.
당신이 누워있던 곳은 보기 드물 정도로 거대한 나무 아래고요.
나무에 금색 새끼줄이 이리저리 드리운 게, 보통 신성해 보이는 게 아닙니다.
고원우:원래 죽으면 다 이런 곳에 오는, 아니, 난 죽을만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나무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M:나무는 딱 보기에도 신성해보이고, 어디인가 조금 익숙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모양새입니다.
이거, 어디에서 한 번쯤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은데······.
드라마?
(아닐 것이다.)
고원우:친구 따라서 종종 보던 드라마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아닌가⋯⋯.
그렇지만 당신의 주변에도, 비슷한 게 하나 정도는······.
생각을 하다 보면 학교 뒷산의 신목이 떠오릅니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산이 있잖아요.
그 곳의 신목이 이런 느낌이었죠. 이것보다 꾸밈은 덜해도 말이에요.
물론, 얼마 전에 잘렸다던가······.
고원우:그런 일도 있었지⋯, 원래 나무 함부로 베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곰곰.)
M:고민을 하며 본인 주변을 둘러보면, 교실에 있던 물건들이 함께 떨어져 있습니다.
본인의 가방부터 사물함의 과자, 초콜릿 같은 먹을거리까지 전부 말이에요.
가방에는 뭐가 들어있긴 한가요?
고원우:(가방 열어서 휴대폰 꺼낸다. 작동은 되나?!)
M: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켜지기는 하지만······ 통신 전파가 하나도 안 잡히는데요?
고원우:어디길래 전파도 안 잡히는 거야. (탁탁.)
(물건들 흙 털어서 가방에 곱게 넣는다.)
눈이 마주친 건 두 발로 선 붉은 여우입니다.
심지어 옷을 입고 있는 데다가, 마치 사람처럼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네요.
M: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적어도
당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상식에서는요.
고원우, SAN 판정 진행해주세요. (0/1)
고원우:SAN Roll기준치: | 49/24/9 |
굴림: | 96 |
판정결과: | 대실패 |
(충~격.)
인간이 말을 하는 것도 종종 저게 말인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인간도 아니고 동물이라고요?
두 발로 섰다고요?
옷도 입었다고요?
서, 설마······.
붉은 여우: 설마······. 그, 그러니까······.
인, 인, 인간이다!!!!!
M:그제서야 당신은 하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까 당신을 깨운 목소리의 주인은 이 여우였네요.
여우의 소리에 반응한 '무언가'는 재빠르게 나무 주위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세찬 소리를 내며 하나둘씩 땅바닥으로 착지하는 거죠.
정체 모를 벌레, 도깨비불, 목이 비틀린 남자,
뿔이 달린 여자, 여러 동물이 조합된 고양이, 두 발로 걷는 쥐······.
하나같이 전부 인간이 아닐 뿐더러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게 날뛰는 것은 그나마 귀여운 축에 속하는 여우입니다.
붉은 여우: 허, 거참? 하?! (털을 빳빳하게 세운다.)
고원우:관찰력기준치: | 65/32/13 |
굴림: | 1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M:공포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생명체들
―굳이 정의하자면 요괴들―은 전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문득 당신은 본인 자신의 옷을 내려다봅니다.
모두 함께 맞춰 입은, 똑같은 옷에다 이 느낌······.
어쩐지 교복이 떠오릅니다.
(잠시 고민.)
다들 단체복⋯ 이 잘 어울리시네요.
도깨비불: 미호, 왜 발견하자마자 바로 말하지 않은 거야?
고원우:원래 인간은 말을 하는데. (겁 없이 태클.)
붉은 여우: 아니~ 쓰, 쓰레기통 도깨비인가 했지! (억울한 표정.)
봐, 지금 저렇게 대꾸도 하잖아!
M:요괴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을 던집니다.
마치 길을 잃고 집안에 들어온 야생 동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말이에요.
뿔이 달린 여자: 그러게, 대꾸도 하네? 신기해~.
고원우:(당 딸려서 가방에 있는 초콜릿이 먹고싶다.)
뿔이 달린 여자: 얘, 너 진짜야? 분장 아니고? (손을 함부로 뻗어 만지려는 시도를 한다. 머리카락이라던지⋯.)
고원우:(자연스럽게 손 피하며⋯.) 분장하면 티 나잖아요.
죄송한데, 여기 어딘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러 동물이 조합된 고양이: 봐, 이상한 옷을 입고 있어. 문을 열고 온 건가?
목이 비틀린 남자: 다들 규칙이나 지켜. 요괴 5대 철칙을 잊은 거 아니지?
뿔이 달린 여자: 그래도 신기하잖아~! 여기가 어디녜!
M:
말하는 것을 보면 당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만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호기심을 보였던 것도 잠시고, 본인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입니다.
당신, 그러니까······ 인간에게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 같은 요괴도 있지만, 소수일 뿐입니다.
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악의적으로 변해갑니다.
"전부 처음 먹어보는 거니 가릴 게 있어~?!"
고원우:(가방 제대로 매고 어디로든 튈 준비를 한다. 눈치만 봄.)
M:도망칠 준비를 하지만, 당신의 눈에도 마땅히 도망칠 구석은 없습니다.
당신의 뒤는 신목, 앞과 옆은 빼곡하게 요괴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까요.
시도할 게 더 있을까요?
M:지금 고원우라는 인간은 구경거리이자 뷔페 만찬이나 다름없는 신세입니다.
언어가 안 통하는 것도 아닌데 대화는 통하지 않습니다.
늑대 요괴 하나가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당신을 향해 돌아섭니다.
그렇지만 발끝에 삐져나온 발톱은 금방이라도 인간 하나쯤은 찢어낼 것 같습니다.
컴컴한 배경을 등진 채 당신을 바라보는 노란 눈은⋯⋯
그 눈이 당신은 완벽한 타자라는 사실을 선고합니다.
"간만의 인간이라 반갑긴 했지만, 미안하게 됐어."
당신이 도망칠 수 있는 곳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사물함 문 하나를 닫으러 가지만 않았어도······.
경쾌하게 울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나뭇잎이 몇 장 떨어집니다.
'어떤 존재'는 사뿐히 땅바닥에 내려앉습니다.
그러나 그 착각 덕분에 하늘에서 무엇이 떨어졌는지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묘하게도 당신에게마저 익숙하게 느껴지는 존재.
희란:너희는 내 말이 그렇게 날릴 만큼 가볍냐? 고양이 귀를 단 분홍색 털의 요괴는 다른 요괴들과 당신의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고원우:⋯⋯. (뭔가 솟아날 구멍이 생기지 않았나?)
"문을 넘어온 손님은 건드리지 않도록 너희가 누구랑 약속했지?"
짤랑, 다시 방울 소리가 울렸던 것도 같습니다.
희란:너희, 내가 어디까지 하나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거 몰랐니? (제 팔짱을 엮고 인상을 찌푸린다.)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는데, 도저히 두고 볼 수도 없게 만들더라.
그것 참 기특도 하시지······.
희란:(힐끔 시선을 주더니 다시 돌린다.) ······.
자, 그래서.
이제 너희가 할 일은?
"인간이 별미라고 해서, 궁금해서 그만⋯!!"
요괴들은 처음 등장했던 순간처럼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미호라 불린 붉은 여우 역시도 발발 떨며 자리를 떠납니다.
희란:(사라지는 광경을 눈에 담더니 이윽고 몸을 돌려 남은 상대를 마주본다.) ······.
······붉은 빛. (뒤를 이어 무언가 중얼이다 입을 다문다.)
아니지, 인간이네.
거기, 인간 맞냐? 이 꼴을 내고 아닐 리도 없지만.
고원우:⋯⋯당연히, 인간이죠⋯. (자신을 살려주었다는 게 분명하니 화를 낼 생각조차도 없다.) 저기.
제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세요?
희란:어디로 가야 하냐 물으면⋯ 문을 넘어야 한다는 소리를 할 수 있긴 할 텐데.
이곳은 인간이 있을 곳이 아니야. 문이 열리는대로 빨리 돌아가라.
고원우:전 문이 언제 열리는지도 모르는데요. 애초에, 그 여우만 아니었으면 죽은 걸로 알고 있었을 거예요.
여긴 어디죠?
희란:인계는 아니지.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오는 곳도 아니고.
뭐, 통칭하자면 누가 '이계' 정도로 붙이긴 하더라.
문은 말이지······. (잠시 시선이 머문다. 숨이 두어 번 오갈 정도의 간극이 벌어진다.)
축제가 끝나는 날.
축제는 내일부터니까 나름 오래 기다려야 하기는 하겠다.
고원우: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나 어디서 지내야 해?!' 대놓고 티내며 당황했다.)
빨리 여는 방법은 없는 거죠?
희란:("어린 맛이 좀 있네······." 라며 중얼이더니 으쓱였다.) 글쎄, 있어도 보통은 모를 걸.
머물 곳은 당연히 없지?
고원우:그런 게 있었다면 간절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을 걸요.
어디서 지내든 딱히 상관 없으니까⋯⋯.
희란:왜? 있을 곳이 있다 해도 돌아갈 곳에서 훨씬 더 좋은 것들이 널 기다릴 텐데.
여기는 상관없지 않나······.
고원우:내가 나고 자랐던 곳이 딱히 그립진 않아서요, 아. 전파 안 터지는 건 확실히 불편하긴 한데⋯ 어차피 여긴 휴대폰 쓰는 분은 없는 것 같으니까 괜찮겠죠.
최소한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정말 상관 없다니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거짓말 할 정도로 철면피는 아녜요.
희란:그곳은 어떤 곳인데 그립지 않을까⋯⋯. 참 이상하네.
휴대폰인지 뭔지는 몰라도 일단 여기엔 없는 물품이 맞아. 그나저나 나도 아이를 주웠으면 책임 정도는 져야겠지.
내가 머물게 해줄게. 참고로 난 인간 먹는 취미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고원우:제가 온 곳은 매번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서 과거의 것은 그리워 할 틈이 없는 곳이죠, 휴대폰에 사진 찍어둔 게 있으니까 그거 보여 드릴게요. 그리고⋯⋯.
도움을 가릴 처지는 안되는 것 같으니, 잘 부탁 드립니다. (꾸벅.)
저, 그런데⋯ 돈 같은 건 없어서 드릴 게⋯⋯.
(가방에서 쪼꼬렛 꺼내서 쥐여줌.)
희란:새로운 것들에 항상 한눈이라도 팔 수 있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런 게 없으면 틈 사이로 어떤 것이든 그리워하게 될 수 있으니까. 아무튼⋯⋯.
(손에 쥐여진 것을 내려다보다 작게 미소를 띈다.) 인간이 이렇게 귀엽게 굴 줄도 알았다고?
징글맞은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어리면 이러나? (조금 시선이 관찰의 방식으로 넘어갔다.)
······. (한 10초간 봄.) 꼬맹아, 내가 금전 같은 걸 받아서 뭐 하겠니? 착하게나 따라와라.
고원우:뭐든 받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워서요, 이런 건 나이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상대에게 시선이 잠시 닿는다. 처음 보는 사람, 그러나 나를 도울 정도로 상냥한 사람.)
그나저나, 진짜 선생님이에요? (고로 그에 대한 의심은 수면 아래에 깔려 있기만 하다. 뒤를 졸졸 따라간다.)
희란:웃겨, 정말. 낯선 곳에 떨어진 인물답게 조금 더 필사적으로 구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넌.
(몸을 돌리고 앞서 걸어 나간다.) 내가 선생님으로 안 보이나? 막 만만해 보여? (농담에 가깝다.)
뭐, 됐고······. 넌 이름이 뭐야?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당신의 시야가 넓어집니다.
그 광경 사이로 가장 가까이 보이는 것은 어떤 건물과 그 앞의 광경입니다.
M:건물의 건축 양식은 동양의 것과 유사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나라의 것이라고 하기엔 구분이 어렵네요.
건물에는 옆에 있는 요괴와 같은 옷을 입은 요괴 몇몇이 드나듭니다.
여기는 영월호야.
네가 아까 봤던 애들은 여기 학생이고.
고원우:⋯⋯학생이 그렇게 크고⋯ 사나울 수 있구나. (중얼중얼⋯.) 아, 그럼 여기 위험한 거 아닌가⋯.
희란:인간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생각은 없단 건 알겠다.
희란:(한숨 한 번 쉰다.) 요괴 5대 철칙이 있는 이상 안 잡아먹어, 바보야.
고원우:아, 아까 듣긴 했는데⋯ 정확히 5대 철칙이라는 게 뭐예요?
희란:⋯⋯요괴들의 규칙. 뭐, 그런 것치고는 요괴가 정한 게 아니기야 하지만.
고원우:요괴가 정한 게 아닌데 왜 따르는 거예요?
하지만 영월호 출신만은 따르기로 한 규칙이라고 하는 게 맞긴 하겠네.
이유가 더 필요하다면⋯ 어떤 사람과 그러기로 했으니까.
고원우:무슨 규칙이 있는지 궁금해요, 일단 그 중 하나는 인간을 죽여선 안된다는 거겠고.
그리고 그 사람은 누구인데요?
희란:뭐, 나름 고리타분한 내용이 있지. 네가 말한 건
'찾아온 손님에게 해를 가하지 말아라.' 정도지만.
(시선이 머문다. 정확히는 눈을 응시했다.) 그건⋯⋯,
이곳의 초대 선생.
그러니까 내 선배.
고원우:(얌전히 입 다문 채 그 '초대 선생'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찾아온 손님에게 최소한의 자비를 베풀길 바랐으니 분명 괜찮은 분이겠지⋯.)
좋은 사람이었나봐요.
진짜 성격 이상한 인간이었으니 그런 착각은 좀.
고원우:성격이 이상한 사람이 왜 학교의 선생이 되고, 그런 규칙까지 만들어요? 진짜 이상한 사람을 당신이 못 만나봐서 그래요. (끄덕끄덕⋯.)
희란:그게 나도 항상 궁금했던 지점이야. 대체 어째서인지 모르겠네. 그런 취미 없을 텐데 말이지. 안 만나봤으면 말을 말아라⋯⋯. (질색했다.)
고원우: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못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잘해주는 사람이었나⋯⋯. (질색한 얼굴 보며 타인을 위해 더 변명할 생각은 접었다.)
앞으로 이 이야기 안 할게요, 표정 푸세요.
희란:(팔을 뻗어 손끝으로 이마를 가볍게 민다. 인간에게 적합한 세기를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웃겨 정말. 됐다, 됐어.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야지. 타지에 와서 말이라도 편히 못 하면 되겠냐.
고원우:원래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하고 사는 인간은 없어요, 그래서 괜찮은데⋯⋯. (쭉 밀린다.) 의외로 세심하시네요⋯.
희란:괜찮은 것도 많다. ("그걸 밀리나⋯⋯." 같은 투덜거림 한 마디 내뱉고 팔 내린다.)
네가 살던 곳에 그런 인간이 없다고 해도 여기에선 지금 인간은 너 하나야. 그런 틀을 굳이 씌울 건 없어.
내가 이런 소리 해서 뭐 하겠냐만⋯⋯. 너는 질문도 별로 없네. 궁금한 거 없어?
고원우:축제가 끝나면 문이 열려서 나갈 수 있고, 그 전까지 절 보호해줄 사람도 찾았으니까⋯⋯. (손가락 하나씩 접는다.) 더 궁금한 건 없지만, 그것보단 여기서 더 귀찮게 굴면 안될 것 같아서요.
희란:입은 옷 보아하니 학생 같은데, 학생이란 자고로 좀 귀찮게 굴어도 되는 법이야. 선생이란 아무 생관도 없어 보이는 녀석에겐 좀 신경이 쓰이길 마련이란다.
그러니까⋯⋯ 설명은 알아서 해줄게. (한 걸음씩 앞서 나간다. 걸음걸이가 인간과 어긋나게 가볍다.)
영월호는 500살에서 800살 사이 요괴들을 가르치는 곳이야. 뭐, 그렇다고 학년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시험은 100년에 한 번. 이걸 통과하면 누구나 졸업할 수 있지. 나름 요괴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교육 기관인 만큼 목표로 삼을 만도 한 곳이지..
(제 옷깃을 손끝으로 잡아올린다.) 이건 여기 교복.
네가 어떻게 왔냐조차도 궁금해하지 않아서 덧붙이는 소리지만⋯⋯ 네가 기대고 있던 곳은 내가 수호하는 신목이었어.
고원우:⋯⋯그런가. (무엇이든 물 흐르듯 가볍게 넘기되 타인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사는 게 기본이다. 그런 말을 듣고서는 조금 기분이 미묘한지, 제 뺨을 긁었다.) 귀찮게 굴어도 된다는 말은 또 처음 듣네요.
보통 학교에서 뭘 배워요? 인간들이랑 차원이 다를 것 같지만. (물끄러미 보다가⋯.) '어떻게 왔냐'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금방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오류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속 편하게.
희란:나한테 하는 질문으로는 '가르쳐요?'가 맞는 거 아니야? 전직 학생으로 답해주자면 학문을 배우고, 가치를 배우고, 힘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살아가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거야.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는 길은 존재하기에 도달할 곳까지 쌓을 것을 마련한다 정도가 고운 설명.
너는 네가 신기한 편인 걸 아니? 나라고 인간을 아주 안 만난 건 아니거든.
보통 여기 온 인간들은 불안해 하고는 해. 안전히 보장되면 잠시라도 디딜 곳을 찾으려 무엇에라도 매달리고. 질문 같은 것을 계속 잇는다던지 말이야.
그런데 너는⋯⋯. (생각은 흐른다. 물길을 타고 흐르듯 결론은 내어진다. 시내는 걸국 더 넓은 곳으로 흐르길 마련이니 적당한 구간에서 틀어막는다. 아, 저 애는⋯⋯.)
너, 정을 붙일 만한 게 없나 보네.
고원우:이제 제 가족보다 더 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셨네요. (가벼운 어조.) ⋯⋯아, 이런 농담은 좀 그런가.
제가 온 곳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애들이 종종 바보 같은 소리를 하긴 해도 나름 그 사이에 있으면 즐거울 때도 있거든요.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런 거죠, 만약 이곳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익숙해진다면 여기서 지내는 것도 싫지는 않을 것 같다⋯ 라는 예상.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목숨에 대한 위협만 받지 않는다면 사실 여긴 흥미롭고 아름다운 곳이잖아요? 내가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희란:(작게 한숨을 뱉었다.) ⋯⋯이상한 녀석이네.
엇비슷한 소리를 언젠가 한 번 들은 적이 있지. 유감스럽게도.
따라와. 네가 지낼 곳으로는 데려가 줘야 할 테니까.
고원우:네, 네. (콧노래 흥얼흥얼⋯. 따라간다.)
M:말의 맥락을 들어보면 '본인 집으로 데려가 주겠다' 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앞선 인영의 뒷모습. 걸음에 따라 갈라진 꼬리가 흔들리는 광경,.
점점 민가가 보이지 않는 으슥하고 외진 곳으로 가는 것 같지 않나요?
벌레나 올빼미가 우는 소리만 음산히 울려 퍼지는 뒷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뒷산은 잡풀이나 나무가 무성합니다. 걷기 무척 힘들 정도로요.
앞서는 인물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가로질러 오르고 있지만요.
어느덧 해는 완전히 지고, 종종 날아오르는 반딧불만이 길을 밝힙니다.
사이로 들리는 방울 소리만이 만들어진 소리입니다.
고원우:(땡땡이 칠 때 이런 곳으로 한 번씩 가보긴 했었다. 그런데 이정도로 외진 곳까지 멀리 가본 적은 없었는데⋯⋯.)
고원우:민첩기준치: | 60/30/12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M:이런 곳으로 온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니 못 오를 것도 없⋯⋯.
쿠당탕,
그대로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HP 1 차감해주세요.
희란:그래도 잘 따라오네 했더니⋯⋯. (우뚝 멈춰 섬.)
희란:웃기지 마라. 못 오르면 좀 기다려 달라고 할 것이지.
희란:하긴, 이런 곳에서 굴러떨어지는 인간이 하나 뿐일 리가 없지. (전혀 안 듣는다.)
(이내 손을 뻗어 내민다.) 잡을래? 고집 피울 거면 피우고.
고원우:원래 이렇게 손 잡아주겠다고 하고⋯ 그래요? (일단 붙잡음.)
희란:이런 것도 못 오르는 요괴는 없어. (붙잡자 이끌듯 걸음을 다시 오른다.)
M:그러나 객관적인 시점에서, 이것은 분명 호의입니다.
호의가 아니더라도 싫은 것에 친절을 베풀지는 않긴 하겠죠.
고원우:(안 싫어해서 다행이다 같은 생각 중⋯.)
M:하지만 어째서? 앞선 사례를 보면 독특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데 말입니다.
고원우라는 사람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요.
고원우:그냥, 저 안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좋네요.
(솔직.)
희란:넌 뭐 너 싫어하는 인물 더 많이 만났어?
누군 싫어하는 것 같아서 재밌다고 하던데.
고원우:딱히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냥 잘해주시니까 좋네요.
(저벅⋯ 저벅저벅.)
가파른 산지가 어느새 밟기 좋을 정도로 평평해집니다.
희란:이건 좀, 바보 같은 소리기는 한데 말이지.
혹시 여길 알고 있어?
몇 마리로도 교실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만들던 작은 빛들을 말입니다.
지금 고원우라는 인간의 앞에는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백,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호수를 둘러싼 풀과 나무들은 바람의 결에 맞춰 몸을 흔들고, 새까만 도화지 위에 방울방울 떨어진 물감 조각처럼 반딧불이의 빛은 번져나갑니다.
어두운 밤하늘, 별처럼 푸른 빛은 분명 당신의 세상의 것은 아님을 증명하듯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은 조화롭고, 넋이 나갈 만큼 환상적인 풍경.
M:그 사이로 건네진 물음은 타인을 궁금해하지 않는 인간에게도 비칠 만큼,
어떤 것을 담고 있습니다.
짐작은 청자의 몫이지만요.
고원우:⋯⋯가본 적 없지만 그리운 풍경이 있다는 문장을 믿은 적은 없는데, 이런 거 같네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걸로 됐겠죠?
이상한 인간답게 그리워할 틈 정도는 가지고 있나 봐?
고원우:사실 몰랐어요, 그런 걸 저도 가지고 있는 줄. 지금 알았네요. (손 펼쳐본다.)
희란:(짧게 웃었다. 따라 한 손 정도는 펼치는 체 굴었다.) 쉽게 못 잡을 걸.
M:정말 시도해볼 생각이라면
민첩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민첩기준치: | 60/30/12 |
굴림: | 3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빛의 궤적을 따라 손을 뻗습니다. 그리고 그러모읍니다.
빠저나가는 빛의 형체는 없습니다. 잡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빛의 잔상이 성공의 여부를 알려주네요.
고원우:나름 승부욕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거 없다.)
희란:이겨먹어서 참 좋겠네! (다시 방향을 잡아 걸음을 옮겼다.)
⋯⋯이런 거?
희란:이제 그걸 똑같이 말하면 별로 안 좋을 거면서.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봐요. (응?)
앞으로 네 말에 창의력을 좀 더 유의깊게 봐주도록 하지⋯⋯.
('이 사람 뭘까⋯ 어렵다⋯.')
그래도⋯ 뭐, 순발력은 나쁘지 않네.
여기랑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겠어.
(다시 돌아서서 터벅터벅⋯⋯.) 됐냐?
고원우:방금 엄청 어색했어요~. (결국 웃었다⋯.)
다른 길은 없으니 아마 호수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거겠죠.
희란:그럼 나는 그동안 집에 헤엄쳐서 갔겠냐?
고원우:아~. 고양이니까 물을 싫어하는 건 당연하긴 한데⋯⋯.
(수긍.)
(1 헤엄 정도는 친다 2 물 싫어) 2
그런데 진짜 물 싫어하는 건 맞아. (열은 왜 받은 거지⋯⋯.)
고원우:요괴는 어떻게 우나 해서⋯⋯. (주제 돌림.) 이거 그대로 타면 되는 거죠?
희란:궁금하면 확인해 보던지⋯. 와중에 속이 너무 빤히 보여! (조각배의 노 잡는다. 잡는 폼새만 보면 때리려는 것 같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그래, 노동 안 시킬 거니까 타라, 타.
고원우:(물가를 살피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성큼 조각배에 탄다.)
희란:(그 뒤를 이어 조각배에 올라탄다. 익숙하게 다시 노를 고쳐 잡는다.)
호수의 잔잔한 수면을 헤치며 두 사람을 태운 조각배가 앞을 나아갑니다.
일그러졌다 수복하기를 반복하는 수면 위로 조각배와 그림자가 일렁입니다.
반딧불이는 주변을 배회하며 조각배가 길을 잃지 않도록 빛을 밝혀줍니다.
이 세계에는 그런 법칙이라도 존재한다는 듯이 말입니다.
희란:인계에도 반딧불이 정도는 있다고 하던데, 맞나?
고원우:있어요, 마주치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희란:시간이 확실히 지나기는 했나 봐. 이전에 물었을 땐 종종 보긴 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거기에도 전설 같은 게 있어?
고원우:없어요, 제가 모르고 있을 확률이 훨씬 더 높겠지만⋯ 일단은. (곰곰.)
희란:혹시 알려나 했는데, 아쉽네. 이건 예전에도 제대로 된 답은 못 들어서 말이지.
(평온한 낯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잠시 흉흉해졌다 돌아온다⋯.) ⋯⋯아무튼. 이 세계에는 누구나 아는 전설로 있거든.
고원우:말해주세요. ('표정 변했다⋯.' 자연스럽게 모르는 척 한다.)
희란:여기에서 반딧불이는 운명과 길조의 상징이야.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인연이 맺어지는 곳에는 반딧불이가 함께한다는 전설이 있어.
어두운 밤의 길잡이로 여행객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돕고, 저승으로 향하는 망자가 다른 길로 새지 않도록 하고⋯⋯.
평생의 연을 맺을 때도 반딧불이가 많은 곳을 고르기도 해. 이건 좀 웃긴 미신이 있어서긴 하지만.
고원우:그럼⋯⋯. (전설이 사실이라면 인계의 도시에서 올바르게 맺어지는 인연이라는 건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인연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지 못할 테니까. 눈발을 이겨내고 얼어붙은 손으로 인연을 찾고자 하는 이가 있을까?)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라면 모를까. 그러니 반딧불이가 촛불처럼 일렁이며 존재하는 이계에는 있을 테고⋯⋯.)
평생의 연이라는 거, 당신은 맺어본 적 있어요?
희란:평생의 연이라⋯⋯. (말의 늘어짐은 생각을 펼치는 것이 아닌 기억을 되짚는 일이었다. 세월은 길지만 짧고, 거쳐온 길은 단조롭다. 통상적인 용법의 뜻에 대한 답은 기억을 되짚을 것도 없을 터나 의미가 다름을 안다.)
웃긴 미신이 있다고 했잖아. 미신은 정말 미신일 뿐이더라.
(세계가 존재하는 이상, 어디든 법칙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인연에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그런 것이 존재하는 이상 맺고 끊어짐에 마땅함이 들어갈 테니까.)
(적어도 그렇게 여겨야⋯⋯.) 그 미신은 함께한 반딧불이는 잃어버린다 해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거거든.
평생은 누구 하나의 끝에 가봐야 아는 거니 없다 해야겠네.
고원우:그럼 끝까지 모르는 편이 더 좋겠네요, 영원이라는 건 없다고들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질 인연 같은 건 어딘가에 있겠죠. 당신에게도, 저에게도. (고개를 돌려 반딧불이를 시선으로 좇는다.)
뭐, 이렇게 말해도 좋게 생각해봐야 가족 쯤이겠지만. (적당히 웃어 넘긴다.) 우리 언제 도착해요? 이 배 가라앉는 거 아니죠?
희란:왜, 나름 끝을 확인한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도 존재하는 법이야. (이전에 비하면 가볍게 뱉는 어투다.)
(시선이 너머를 바라보고, 무언가를 가늠한다.) 눈 감고 100초 세면 도착하게 해줄 수도 있는데, 어때?
고원우:전 정체 모를 상자에 무언가 담겨 있다면 열지 않고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타입이라. (순순히 눈 감는다.) 이렇게요?
희란:그래, 그렇게. 이제 100초 전에 눈 뜨면 벌 받는다.
M:무언가 낯선 기분이 순간적으로 들어옵니다. 스치는 바람이 조금은 더 거세진 것도 같습니다.
그런 느낌에 반하게, 주위의 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고요합니다. 어떤 잡음도 사이를 스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초를 백 번 셀 만큼의 시간이 지날 즈음⋯⋯.
눈을 뜨자 조각배가 호수의 끝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수와 맞닿은 지면에 달맞이꽃이 활짝 피어 있었으니까요.
새하얗게, 혹은 노랗게 핀 꽃밭이 간간히 바람에 일렁이는 것이 보입니다.
조각배에서 가볍게 뛰어내린 요괴가 익숙하게 너머의 오두막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꽃밭의 중간 즈음, 요괴는 뒤를 돌아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휘날립니다.
고원우:지능기준치: | 40/20/8 |
굴림: | 2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당신은 요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무언가의 사실 하나를 깨닫습니다.
산을 넘어오고, 호수를 지나오면서 무심결에 흘려 넘긴 것이 있습니다.
분명 아까 호수에는 달도, 별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비친 것이라고는 오로지 두 인영 뿐이었죠.
그렇다면 하늘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요?
고원우:(하늘을 쳐다본다, 분명 아무것도 없지 않았나?)
M:그렇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실제로 달도,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새까맣기만 한 하늘이 당신의 시야에 들어옵니다.
고원우:(여기 떨어졌을 때 해도 본 적 없던가? 떠올려본다.)
M: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도 하늘에는 태양 외의 별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달과 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하늘 위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위화감을 인지하지 못했지만요.
사실을 인지하자, 이해할 수 없도록 아득한 공포심이 인간을 순간적으로 엄습합니다.
고원우, SAN 판정 진행해주세요. (0/1)
고원우:SAN Roll기준치: | 48/24/9 |
굴림: | 2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해당 사실을 모두 인지한 뒤, 어떻게 행동할까요?
고원우:⋯⋯여긴 원래 하늘에 떠있는 게 없어요?
그것도 밤하늘인데 거기에 또 뭐가 있겠어.
고원우:이상하네요, 그럼 어떻게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거예요?
희란:그거야⋯ 원래 그런 일이지. 뭐가 있어야 밝고 어두워져?
고원우:태양이나 달, 별 같은 것들이 있거든요. 인계에는⋯. ("그런데 여긴 없는 것 같아서." 작게 중얼거린다.)
희란:⋯얼핏 들었던 것 같은 단어기는 하다. 그것들이 있으면 뭔가 달라?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고원우:네, 반딧불이도 물론 아름답긴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다른 세계니까 그런 거겠죠, 뭐.
희란:뭐어⋯ 그래.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나저나 안 건너오나. 설마 평생 널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고원우: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터벅터벅.)
달맞이꽃이 늘어진 밭을 지나면, 요괴는 오두막의 문을 열어줍니다.
나무로 지어진 집은 아주 오래된 전통 가옥 같은 느낌을 줍니다. 내부에는 침실로 쓰이는 방 하나와 숙식 해결이 가능한 주방 겸 거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른 곳은 딱히 보이지 않네요.
혈연이 있냐고 묻는 건가⋯. 아주 옛날에, 전쟁 때 다 죽었어.
엄청 강한가보다⋯⋯.
희란:내가 선생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모르겠니.
사실 그래서는 아니고⋯ 그냥 누가 자주 못 드나드는 곳이 편해서 그래.
질문 한 가지만 해도 돼요?
무슨 질문인데.
⋯⋯.
없을 것 같아서.
(⋯)
너⋯⋯.
내가 좀 편해졌나 보다?
희란:친구는 없고 좀 비슷했던 거 하나는 있었는데 이젠 그것도 없다, 왜.
고원우:혹시 죽은 건 아니죠? (슬슬 눈치를 본다⋯.) 아까 말했던 그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하면 친근감의 표시였구나 싶은데⋯⋯.
희란:공식적으로는 실종됐고, 내 생각으론 있을 곳으로 돌아갔어. 그 사람이냐고 묻는 거면 그건 맞다, 왜.
그런데⋯⋯ 뭐? (이게 더 어이없다는 낯.)
고원우: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대체 어디에서⋯⋯.
고원우: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아니까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희란:알 수 있는 만큼은 알긴 했다고 생각하긴 해. 하지만 잘 아냐 하면 아닐 걸.
그러는 너는 네 친구들에 대해 잘 알기는 하고?
고원우:⋯⋯이상하다고는 안 하죠, 그 애들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문제 생기는 것도 싫고. (구구절절 변명을 하는 꼴이 됐다.)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아시는 것 같다거나, 친해보인다는 말 듣는 게 싫으세요?
희란:너 그거 친구는 맞냐? 친구 없냐고 물어본 사람 치고는 제법⋯⋯. (눈 가늘게 떴다.)
싫은 건 모르겠는데. 자신이 없는 거에 가깝고⋯ (잠시 침묵.)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짜증난다 정도⋯⋯.
⋯⋯슬슬 손해인데 싶으면 딱 지금만 봐줄 테니까 집이나 구경해라.
고원우:서로 친구냐고 물어보면 선뜻 그렇다고 하거든요~. (당당하게 마주본다.) 그 분의 대답은 잘 모르겠지만 친하긴 했나보네요.
들어가면 안되는 곳 있어요?
희란:껍데기만 친구면 다냐. (궁시렁⋯.)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다고 쳐.
내 집에 들어가면 안되는 곳 있으면 여기서 붙박혀야 할 걸. 그냥 편하게 있어.
고원우:(전부 다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라는 말 아닌가?)
희란:(놀랍게도 말이 저래서 그렇지 상관쓰지 말란 소리다.)
(둘러보자. ㅋㅋ.)
M:내부를 둘러보면 거실 벽면은 책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고 침실에는 두툼한 비단 이불과 베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희란:간단하게 먹을 거 정도는 준비해볼 테니까 무료하면 여기 책이나 몇 권 꺼내 봐라. (성큼 주방으로 간다!)
고원우:(글자에 별 관심은 없지만 성의가 있으니 아무거나 뽑아본다.)
혹은 행운 판정도 괜찮을 것 같네요.
고원우:자료조사기준치: | 40/20/8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M:이상하게도 당신이 읽을 수 있는 문자들로 보입니다. 모국어가 아닌데도 말이죠.
책을 몇 권 뽑으려 걷다 나무 판자를 잘못 밟아 균형을 잃습니다.
덕분에 책 몇 권이 우르르 쏟아졌⋯⋯ 아야!
머리 위로 두툼한 책 한 권이 떨어집니다.
고원우:이런 건 흉기 아닌가⋯? 사람이 읽는다고⋯? (심각한 얼굴로 책 펼쳐봄. 그림 없나?)
M:그림을 찾으면, 놀랍게도 삽화로 간단하게 군데군데 있습니다.
가장 앞장을 보니 <이계 탐험록>이라는 서적입니다.
이계 탐험록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장합니다.
<요괴 5 철칙>, <영월호의 간단한 역사>, <신목의 규칙>, <어떤 기록> 순이네요.
M:핸드아웃 :: <요괴 5철칙> 를 공개합니다.
「 요괴 5 철칙 」—정당한 요괴가 되기 위한 수칙 5가지—
—1칙 자신을 귀히 여기되 남을 인정하여라. 다름은 죄가 되지 않는다.
—2칙, 싸움과 전쟁은 양측을 갉아먹을 뿐이다. 양보는 평화를 위한 가장 편리한 수단이며, 폭력은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
—3칙 배움을 소홀히 하지 말아라. 지식이야말로 가장 날카로운 창과 방패가 되므로. 한 번 배웠다면 되새김을 멈추지 말아라.
—4칙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반드시 되돌아오게 된다. 행함에 책임이 존재함을 유념하라.
—5칙 신목을 수호하라. 정해진 때가 되면, 신목을 넘어 인간 손님이 찾아온다. 문을 열고 찾아온 손님에게 해를 가하지 말고 예의를 갖춰 대하라. |
고원우:의외로 평범하네⋯⋯. (역사 파트로 넘어간다.)
M:핸드아웃 :: <영월호의 간단한 역사> 를 공개합니다.
「 영월호의 역사 」영월호(映⽉湖)는 무영국(無影國) 국경 부근의 고등 교육 기관이었다. 500살~ 800살 사이의 요괴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학년 구분이 없으며 100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통과하면 누구나 졸업할 수 있다.
영월호의 뜰에는 신목(神⽊)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시험이 끝나면 요괴들은 신목을 둘러싸고 춤을 추며 기나긴 축제를 즐겼다고 한다.
요괴들 사이에서 있었던 거대한 전쟁으로 수많은 요괴가 이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고, 이계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전쟁도 너무 길면 재미가 없다. 혼란도 계속되면 지루해진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야 배우다니. 우스운 일 아닌가? 계속 이렇게 지내기도 마땅치 않아 흥미가 가는 것을 본 김에 소일거리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무너진 영월호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다. 졸업 시험이 끝나면 마을을 빌려 축제를 여는 것도 나쁘지 않고. |
M:핸드아웃 :: <신목의 규칙> 을 공개합니다.
「 신목의 규칙 」이계의 신목은 한 그루로, 100년에 딱 두 번 문을 연다. 영월호의 축제가 시작될 때와 끝날 때.
그러나 내가 넘어왔을 때는 전쟁이 끝날 무렵으로, 축제는 없었다. 이에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신목은 요괴들의 요력을 먹고 문을 여는 것이 아닌가?‘
많은 요괴가 근처에 모였을 때 한 번, 이들이 일제히 사라질 때 한 번. 그렇다면 전쟁이 끝난 뒤에 문이 열린 것도 설명할 수 있다.
이 근방은 수 많은 요괴가 목숨을 잃은 곳이므로……. |
고원우:⋯⋯이거 누가 쓴 거지. 초대 어쩌구 인가⋯. (기록을 뒤집어봄.)
M:기록을 보기에 앞서,
관찰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관찰력기준치: | 65/32/13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자세히 살펴보니, 해당 페이지에 타인이 수정한 것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수정된 것 같은 페이지는 '이계의 신목은 한 그루로, 100년에 딱 두 번 문을 연다' 네요.
저자가 수정한 것은 아닌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고원우:조금 더 똑똑한 애가 여기 왔어야 했는데. (다시 연다;)
다시 연 페이지에는 아주 익숙한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M:이건 한글이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부분이 더 이상하게 읽힙니다.
고원우, 모국어 판정(한국어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언어(모국어)기준치: | 40/20/8 |
굴림: | 98 |
판정결과: | 대실패 |
(멍청.)
M:글자를 눈에 담으니 이상할 만큼 머리가 아파옵니다.
어떤 법칙이 이것을 거부하는 것 같이.
(다시 읽어봄.)
언어(모국어)기준치: | 40/20/8 |
굴림: | 3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핸드아웃 :: <어떤 기록> 을 공개합니다.
「 어떤 기록 」이 부분은 나의 모국어로 적어둔다.
읽을 수 있다면 당신 역시 인계에서 이계로 온 인간이겠지. 어느덧 내가 이곳에 온 지 10년이 흘렀다.
요괴들은 생김새보다 사악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과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좀 재미없는 점 같기도 하지만,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여기엔 흥미가 가는 것들이 종종 있으니 나쁘지도 않다.
나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여기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한평생은 이계에서 보낼 게 분명하다. 여기에서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죽는 날까지 아주 심심할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이곳에 온 당신 역시 나름의 의의를 얻길 바란다. 나는 어쩌면 얻은 것도 같으니까.
가장 재미있는 요괴에게 이 책을 맡기며, X월 X일. ■■■. |
고원우:(가장 재미있는 요괴 ─추정─ 가 있을 법한 곳을 쳐다봄.)
M: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무언가 부산스럽게 굴고 있네요.
마지막은 저자의 서명이 적혀 있습니다만, 책이 오래된 탓에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고원우, 관찰, 혹은 행운 판정 진행해주세요. 어려운 성공 이상이 요구됩니다.
고원우:관찰력기준치: | 65/32/13 |
굴림: | 4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M:알아보기 어려운데도 무의식적으로 알아채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저자의 서명이 당신에게 매우 익숙해 보입니다.
이상하게도요.
그리고 동시에, 책의 모든 내용에서 어떠한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이건 꼭 당신이 알고 있는 듯한 내용입니다.
이건 소재의 문제일까요?
모르겠네. (맹⋯.)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읽었다.
공부 이렇게 했으면 선생님이 좋아하셨을 텐데⋯⋯.
희란:아, 그거 읽어? 너한텐 가장 도움이 되긴 하겠다. (쟁반을 가져와서 앞에 내려둔다.)
하는 말을 보아하니 모범생은 아니네.
M:새하얀 사기그릇 위에는 잘 구워진 도마뱀이 예쁘게 담겨 있습니다.
M:다른 그릇 역시도 풍뎅이, 개구리, 잠자리 등 인간이 먹기엔 좀 생소한 생물들로 가득하네요.
그래도 전부 다 구워져 있어요.
SAN Roll기준치: | 48/24/9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저 역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희란:⋯⋯역시 좀 그러나? (귀 좀 쳐졌다.)
아, 그래도 선배는 이게 가장 먹을만하다고 했는데.
별로야? 못 먹겠어?
고원우:(거짓말을 한다1 진실을 말해주자2
2)
(일단 제일 먹을만한 게 뭔지 들어보자.) 그 선배라는 분이 잘 드시던 게 뭔데요?
그 선배라는 사람, 당신을 많이 아꼈나봐요⋯⋯.
(그래도 성의가 있으니 한 입 먹어주기로 한다. 맛있나?)
도마뱀 구이는 생각보다 맛이 괜찮습니다.
닭고기 맛 정도인데요? 조금 더 부드러워요.
맛있는데⋯⋯.
(몇 입 만에 해치움.)
아, 치킨 아세요? 닭을 튀긴 건데⋯⋯. (이후 이어지는 설명.)
희란:(이어지는 설명 듣는다.) 좋아하는 모양이지?
고원우:입에 들어가는 건 특별히 징그럽지 않은 이상 전부 다 좋아해요. (도마뱀 구운 것만 쏙쏙 골라서 먹는다.) 잘 먹는 편이었거든요, 거기서도.
희란:들어보면 편식 안 한다는 소리 같은데, 그러면 나머지도 잘 먹을지 누가 알아. 마음의 편견을 버려.
고원우:그렇다고 풍뎅이나 잠자리 같은 걸 먹고 싶진 않고요. (다 먹고 고민하다가 가방 뒤적임⋯ 챙겨뒀던 간식 몇 개 꺼낸다.) 드실래요?
희란:왜지. 맛 나쁘지 않은데⋯⋯. (억울한 낯으로 중얼이더니 내려다본다.)
주면 거절은 안 하고.
고원우:(쪼꼬바랑 젤리 까서 늘어놓는다.) 골라서 드세요.
희란:(늘어둔 걸 하나씩 집어들어 우물인다.) ⋯다네.
고원우:그런 맛으로 먹어요. (옆에서 함께 우물우물.) 맛있죠?
고원우:단 것도 좋아하고, 매운 것도 좋아하고, 또⋯⋯. (돼지.)
희란:그냥 다 잘 먹네. 넌 요괴였으면 곰 귀 같은 거 달렸겠다.
희란:달아줄까? 사실 영월호 밖의 요괴들은 난폭하기도 하니까 나갈 땐 쓰레기통 요괴라도 해보겠냐고 할 생각이었는데.
고원우:그래야 같이 다니는 게 편하다면. (상상⋯ 해보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듯.) 쓰레기통 요괴는 냄새가 좀 나더라고요.
희란:네가 그걸 체험해보는 모습은 잘 봤어. 웃기더라. (처음부터 지켜봤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는다.)
달고 싶은 귀 있어? 취향도 맞춰줄 수 있는데.
고원우:차라리 겁 먹게 뿔 같은 걸 다는 게 좋지 않을까요? 뾰족한 걸로. (진지함.)
희란:요괴들이 왜 그런 거로 겁을 먹어? 바보⋯.
겉으로 다른 건 신경을 안 쓰는 건가? 그 책에서 나온 것처럼.
희란:뭐 요괴가 요괴다 싶지. 그래도 덩치가 크거나 위험한 특질을 지니고 있으면 좀 위협적이고.
그래서 정말 뿔 달아줘?
고원우:나갈 때 달아주세요, 지금 있으면 잠들 때 불편할 것 같아서요.
너, 근데 위협적이고 싶으면 나처럼 되고 싶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오늘 네가 본 가장 강자가 나인데. (빤히 본다.)
고원우:('물 싫어하고 귀도 팔랑이는 건 무서운 게 아니라 귀여운 거예요.' 생각은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않는다.)
⋯⋯네!
제가 멍청해서요.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면 마음을 바꿀 생각은?
고원우:(어쩐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똑같은 귀 달면 가족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희란:가족이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빤히 보는 채로 되묻는다.)
고원우: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대답하고 당신 뒤에 숨겠죠?
희란:그거 좀 부끄럼 타는 소녀의 반응 같다.
네가 그런다면 나는 일단 지금은 그러지 않을까 싶다고 대답할 거야. 됐어?
고원우:'제일 강한 요괴'가 내 가족이라고 하는 건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희란:너무 실리적인 이유인데, 다른 이유는 뭐 없어? (귀찮게 군다!)
M:이유가 있든 없든, 상관은 없을 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는 끝나가고 이야기를 닫을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당연하게(중요함) 손님은 귀하게 재워야 하는 법.
요괴는 당신을 제대로 된 방으로 밀어넣고 본인은 거실 바닥에 주저앉습니다.
누군가는 싸늘한 나무판자 바닥에 몸을 눕히고,
누군가는 부드럽고 푹신한 이불에서 잠을 청합니다.
한 인간이 이계에서 보내는 첫날 밤이 깊어져 갑니다.
M:평소엔 꿈을 꾸나요? 꾼다면 그 꿈을 기억하나요?
고원우:(하얀 눈이 깔린 곳에 누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꿈을 자주 꾼다. 이따금 이름 모를 여자가 찾아올 때도 있다. 꿈을 잊어버린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오늘 꾼 꿈은 이따금 꾸던 꿈 같은 설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신 혼자만이 자리한 곳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종잡지 못합니다.
당신을 아끼거나, 적어도 관심있게 바라본다는 사실 외에는 짐작할 수 없습니다.
누군지 모를 사람은 당신의 목에 방울이 달린 목걸이를 걸어주며 말합니다.
“만일 네가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다면 무조건 반딧불이의 빛을 따라가.”
불러본 적도 없긴 하지만⋯ 이름이 희란이라고 했죠.
요괴는 좁은 오두막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고원우:관찰력기준치: | 65/32/13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M:오가는 것을 지켜보다 보니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방울 소리의 진원지가 이 요괴라는 것은 어제도 은연중에 알던 사실이지만⋯⋯
그 위치는 발목이네요. 요괴의 오른쪽 발목에 방울이 잔뜩 달린 발찌가 있습니다.
방울은 9개 정도일까요?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꿈에서 보았던 목걸이가 떠오를 수도 있겠죠.
왜냐하면⋯ 실제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목걸이잖아요?
⋯⋯. (뭔가 생각을 끝냄.)
(내 조상 같은 건가⋯⋯?)
(이⋯ 요괴가?)
뭐야?
고 씨예요⋯⋯?
⋯⋯너 혹시 어디 아프니?
고원우:아니, 나름 이유가 있는데⋯⋯. (쫌 억울.) 사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목걸이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지금 가지고 계시는 거랑 똑같지 않나 싶어서.
그럼 조상 아니에요? (빡대가리.)
희란:⋯방울 소리가 난다고 다 똑같은 방울이냐? (눈을 가늘게 뜨고 봄.) 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내 요력이 담긴 방울이야. 뭐냐고 물을 것 같아서 부연하자면, 대충 내 여분의 여력이 이 방울만큼 있다는 소리지.
얼마나 똑같길래 그런 바보 소리를 하는 지 어디 좀 보자. (뻔뻔하다.)
고원우:당신이 아홉 명⋯⋯? (진짜 뭐 어떻게 알아들은 거지? 싶은 소리다. 가지고 있는 목걸이를 내민다.)
희란:바보⋯⋯. (내밀어진 목걸이를 잡아챈다.)
⋯⋯. (방울을 제 눈 앞에 두고 바라본다. 잠시 사이로 말은 없다.)
⋯⋯자, 돌려줄게. (다시 팔을 뻗어 내밀었다.)
고원우:여기도 당신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럼? (목걸이 이리저리 살펴본다.)
희란:내 힘이 들어있는 거지 내가 그 방울에 들어가겠냐?
⋯⋯라고 구박하고 싶긴 하지만, 요괴의 힘은 그 요괴의 일부. 그렇게 정의한다면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은이 아니네.
그러니까 잘 간수하라고. 흔치 않은 거다?
이거 없으면 당신 죽어요? (심각한 얼굴.)
어쩌면? (놀림 90%.)
나갈 때 넣어 두고 가요.
희란:⋯⋯그걸? (제 발치 가리켰다.) 그럼 이것도?
고원우:당신은 강하니까 아무도 공격하지 못하겠지만, 전 다르잖아요⋯?! (진지하다.) 그건 모르겠지만, 제 건 따로 보관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돌아가기 전에 여기 두고 갈게요.
희란:내가 바보라고 하다 보니 진짜 바보가 되어버린 건가⋯⋯. (다 들릴 정도로 중얼거린다.)
고원우:아무튼,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다는 이야기예요. 당신이 다치거나 죽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희란:본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소리를. 안 받을 거니 네가 잘 간수해.
⋯⋯그거 없이도 잘 살았어. 네가 가지고 있던 거잖아.
고원우:조심할게요. (방울을 잘 닦은 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있잖아요, 목숨을 다른 세계에 두고 있어도 되는 거예요? 그 목걸이는 제가 아주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건데⋯⋯.
조상 같은 것도 아니라면,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어요?
희란:(그 광경에는 별다른 말을 얹지 않다가도 들린 질문에는 말문을 열었다.) ⋯⋯고원우라고 했었지. 너 몇 살이냐?
고원우:고등학교 2학년.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듯한 대답.) ⋯⋯아, 이렇게 이야기 하면 모르나? 18살이에요. 그런데 그건 왜요?
희란:생각보다 더 어리네⋯⋯. (잠시 말을 고르는 기색이다.) 꼬맹아, 난 백 살도 넘었어. 사실 백 살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의 숫자가 몇인가를 재야 해.
그리고 나는⋯ 그 시간동안 너희 세계로 넘어가려고 한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바보라도 알아듣겠지?
고원우:⋯⋯그럼 만난 적 없다는 소리네요. (조금 실망했다.) 왜 넘어가려고 한 적 없는 거예요? 궁금하지 않았어요, 바깥이? (질문이 많다. 쫑알쫑알쫑알.)
희란:왜, 나랑 만난 적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니? (놀리는 투.) 내가 넘어가면 어떻게 돌아오라고 그런 소리를. 그래도 내가 여기 선생인데 뒷일 생각 없이 그럴 수는 없어.
⋯⋯이게 정석적인 대답이고, 개인적인 답변도 궁금한가?
고원우:네,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무심코 튀어 나온 대답.)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있어요? (호기심.)
희란:그것 참 특이하네. 이유를 알게 되면 알려줘. (생각이라도 하듯 잠시 공백을 두더니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보게 될지 알 수 없잖아.
네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일지는 들은 단편들로 조금은 상상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직접 본 광경이 아니니까, 사실은 어떤 것도 예상이 가지 않아.
⋯⋯뭘 보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만약이라도 돌아가기 싫어지면 곤란하잖아.
어떤 이유로든 심술을 부리면 곤란해지니까. 자, 개인적인 이유는 여기서 끝.
고원우:⋯⋯. (돌아가기 싫어지면 왜 곤란한 거지? 난 밥만 아니라면 여기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쏟아지는 질문들을 꾹 참아내곤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입이 좀 근질거리는 얼굴로⋯.) 의외네요, 그냥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게 꺼려진다고 할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은근히 심술쟁이⋯⋯. (중얼중얼. 과연 들렸을까?)
희란:(귀 쫑긋.) 뭐? 이게 진짜로. 친절하게 대답해줬더니 누구보고 심술쟁이래?
진짜 심술을 봐도 그 소리가 나오나 두고 보자⋯⋯. (의미심장하다.) 슬슬 준비해. 곧 축제가 시작될 시간이라고.
아, 혹시 짐 나르기?
(짐꾼? 으로 쓰려고 하는 건가 싶어서 납득.) 얹혀 사는 입장에 그 정도는 밥값이라고 생각하고 얼마든지⋯⋯.
희란:아⋯ 네가? 그럴 힘은 되냐? (흝어봤다. 굉장히 하찮게 여기는 시선인데?)
고원우:⋯⋯저 나름 힘 센데요?! (힘자랑 시도.)
희란:어쭈, 꼴에 자존심까지? (하나도 안 믿는 눈치.)
고원우:나중에 살 거 있으시면 대신 들어 드릴게요. (목걸이 챙겼고, 주머니에 사탕도 몇 개 넣었고, 휴대폰도 넣고⋯ 아무튼 철저하게 짐 챙긴다.)
희란:어이가 없다. 그래도 돌려보내기 전에 구경이라도 시켜주려고 가자는 거거든? (뭘 제대로 챙길 생각도 없이 팔짱이나 끼고 있다.)
자주 열리는 축제도 아니고, 나름 재밌어. 물론 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으니 힘 좀 써야겠네.
(팔짱을 풀고 제 귀를 건드렸다.) 진짜 귀 말고 뿔로 할 거야? 정말?
여기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당신이라고 했죠?
고원우:그럼 귀로 할래요, 동생이라고 하죠. 뭐⋯⋯.
(마음의 준비도 마침.)
희란:오빠라면 몰라도 동생이 있어본 적은 없는데 말이지. (작은 웃음소리가 새고 두 손가락을 맞부딪친다.)
M:알 수 없는 기운이 맴돕니다. 어쩌면 온기 같기도 하고⋯⋯.
기운이 흩어진 것을 확인하면, 어떤 처리라도 한 것처럼 새로운 부위가 존재합니다. 비춰보지 않는 이상 본인의 확인은 안 되겠지만요.
희란:자, 이 짓도 간만이네. (박수 한 번 쳤다.)
고원우:(방 안에 있는 거울을 들여다 본다.)
⋯⋯.
움직여요.
만화에서나 나오던 네코미미 소년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두 갈래 꼬리도 있습니다.
고원우:이렇게까지 디테일한 변신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저 세계의 할로윈 쯤 되는 변장을 생각한 듯⋯.)
희란:왜. 완벽해서 뭐 불만 있어? (있어만 봐라 하는 눈빛.)
(하⋯.)
희란:(살피듯 눈을 가늘게 좁히더니 몸을 돌렸다.) 내가 한 번만 봐준다⋯⋯.
달맞이꽃은 활짝 핀 꽃잎을 움츠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밤이 아님을 증명하듯, 반딧불이만은 보이지 않네요.
다른 길도 있었단 말인가요? 싶을 정도입니다.
거의 반대편 방향의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어제가 떠오르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웅성거리는 소리, 웃음 소리, 경쾌한 악기의 가락⋯⋯.
길 안 잃어버리게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
희란:어디 보자⋯⋯. (잡혀 따라가며 잠시 고민.)
이렇게 하면 어떠려나. (남은 손으로 어디에선가 붉은 실을 한 가닥 꺼낸다. 그 실을 원우의 손목에 묶고, 반대편은 본인 손목에 묶어 매듭지었다.)
미아 방지책.
고원우:⋯⋯손 잡기 싫어서, 귀찮아서 이거 꺼낸 건 아니죠? 아니라고 믿을게요. (매듭 짓는 거 보고서도 손은 끝까지 잡겠다는 듯⋯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 그런데 미아 방지책이라고 하니까 진짜 동생이 된 기분이에요.
희란:아니, 내가 설마 그랬겠어⋯⋯? (어이없는 기색을 비춘다. 잡힌 손을 마주잡았다.) 이거, 어린 요괴를 데리고 다닐 때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자주 쓰는 방법이라고. 거리가 멀어져도 자동으로 길이가 조절되고, 그냥 네가 어디 있는지만 따라갈 수 있게 해 주는 거지. (변명이라도 하듯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흠, 진짜 그런 기분 느끼게 오늘은 고희란이라고 붙여도 내가 봐준다.
M:축제 거리 곳곳에는 등이 걸려 있습니다. 다만 아직 낮이라 그런지 불이 붙어있지는 않네요. 민가는 축제를 맞이한 것을 드러내듯 다양한 노점상으로 개조되어 있습니다.
손님과 점원의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인간과 무척 흡사한 점원도, 동물의 모습을 가진 손님도 개의치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축제의 본격적인 시작은 저녁이기 때문에 아직 한산한 편이네요. 노점상, 사격장, 식당가, 점집, 간이 낚시터를 기본적으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원할 경우 영월호까지도요.
고원우:추천하고 싶은 곳 있어요, 누나? (굉장히 자연스러움.)
그리고 너 누나 있어? (자연스러워서 묻는 거다.)
고원우:좋아하는 건 딱히 없지만 들키지 않으려면 북적거리지 않는 곳이 좋을지도. (고개 저었다.) 동생은 있어요.
희란:아, 축제에 북적거리지 않는 곳을 찾는다고⋯⋯.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자연스럽길래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나도 오빠 있었어도 그걸 부르는 건 안 익숙하지만.
영월호 구경할래? 거기는 그래도 당장은 덜할 걸.
고원우:어쩔 수 없잖아요, 누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한 번 들키면 계속 쫓기게 될 거고⋯ 원래 질보다는 양이에요. 많이 몰려오면 끝이라고요. (진심?)
좋아요, 그쪽으로 가요.
희란:말은 잘 하는군⋯⋯. (잠시 고민하다 손을 잠깐 놓는다. 그리고 제 겉옷을 벗더니 어깨 위로 걸쳐준다.) 안 들키고 싶단 바람이 있었으면 이런 거 하나는 달라고 해야지.
자, 그럼 가자. (다시 손을 내밀었다.)
고원우:⋯⋯추울 것 같아서! (변명.) 누나한테 받은 게 너무 많아요. 여기서 더 달라고 하면 양심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손 잡는다.)
oO(왜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희란:그냥 양심 좀 버리고 살아라. 일단 말이나 해보고 해주나 안 해주나를 재보라고. (투덜거리더니 방향을 잡아 이끌었다.)
고원우:저희 처음 보는 사이거든요?! (이후로 쫑알거리며 따라감⋯.)
특별한 것은 모두가 '교복'을 입고 있다는 정도겠습니다.
요괴들은 자신들의 선생님은 잘도 알아보는다 다들 인사를 건네고 갑니다.
당신의 얼굴을 보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겨리지만⋯⋯
쫑긋한 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존재가 인간일 리는 없으니까요.
영월호가 보이고, 영월호 내부로 들어가는 것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게 선생님이 옆에 있는데 안될 게 어디에 있겠어요?
M:영월호 내부는 조금 낡은 옛 시대 학교를 연상시킵니다. 바닥을 밟을 떄마다 오래된 나무가 삐걱거리고, 어두운 복도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폐교 담력체험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교실마다 나무로 된 의자와 책상은 당연하게도 갖춰져 있습니다. 축제인 만큼 당장은 비어 있지만 말입니다.
희란:여기가 우리 학교야. 인간한텐 오히려 좀 친숙할 것 같다고 추측되기는 하는데⋯⋯.
고원우:아. (귀신과 요괴의 차이에 대해 한참 딴 생각을 하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친숙하긴 한데 묘하게 분위기가 무겁고 서늘하지 않아요? 들어오면 안될 장소에 온 것 같고⋯⋯.
⋯⋯이게 진짜 학교라니. (중얼중얼.)
희란:⋯⋯학교가 아니면 뭐 같은데. (시비 걸린 것 같은 낯.)
고원우:죽은 요괴 (로컬라이징) 가 나올 것 같아요.
(말하고 나서 눈치 봄.)
희란:나올 가능성이 없잖아 있지. (농담이다.)
(두리번⋯.)
희란:이 세상에 죽은 요괴가 일어나서 다니겠냐고! 죽으면 없는 거지!
고원우:인간은 죽어도 영혼의 형태로 생전 좋아했던 곳을 돌아다니는데 여기라고 다를까 싶었어요. 전 그런 거 믿거든요⋯⋯. ("없으면 좀 쓸쓸하니까." 중얼중얼.)
희란:흠⋯⋯. (가만히 서 있던 자리에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이상한 부분에선 외로움을 타는 것 같단 말이지.
나는 그런 건 안 믿어. 적어도 요괴는. 요괴는 죽으면 무엇으로라도 세상의 구성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실제로도 요괴가 죽은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뭐, 영혼 정도야 돌고 돌아 언젠가 새롭게 존재하겠지 싶지만⋯⋯.
고원우:인간이 죽으면 그 자리에 육체가 남아요, 보통 자연으로 완전히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 태운 다음에⋯ 뿌리기도 하고요. 그런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점에서 요괴가 부럽기도 하네요. (곰곰⋯.) 요괴는 인간보다 훨씬 더 자연에 가까워서 그런 걸까요? 일단 짐승의 형태를 일부 닮기도 했으니까.
영혼이 돌고 돈다면 언젠가 누나가 인간이 될 수도 있겠네요, 아. 이거 너무 저주 같나?
희란:그건 처음 알았네. 여기서 인간이 죽는 건 보기 어려우니까 말이지⋯⋯. (그야 죽기 전에 돌려보내니까.) 그렇다면 나는 인간이 조금 더 권리가 있다고 보는데. 친인이 그 사람을 돌려보낼 수 있는 거니까. 요괴는 죽는 순간을 보지 않으면 흔적으로만 알 수 있고⋯⋯.. ("확신을 얻지 못하면 온전히 맺지도 못해." 중얼거린다.)
넌 인간이 된다는 게 저주 같냐?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물론 그러려면 죽어야겠지만.
고원우:그러니까, 누나는 확실한 게 좋은 거죠? 가면 간다고 이야기 하고, 아니면 보이는 곳에 눌러 붙어 있어야 하고. 무엇에 훨씬 더 무게를 두는 지는 잘 알겠어요. ("되게 피곤하겠다." 쓸데없이 한 마디 덧붙인다. 역시 입이 문제다⋯.) 하지만 전 확신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무언가가 사라지면 그냥 그것으로 끝이고⋯ 어차피 내가 맺어도 끊기지 않는 것도 하나 쯤 있더라고요. 아무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거예요, 요괴처럼 가볍게 살고 싶다.
그래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흔적을 짙게 남기는 인간이 된다는 건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닌거죠! 음, 제가 이런 어려운 생각도 할 수 있었다니. (으쓱.)
어렵게 살지 마세요, 누나. 아, 그렇게 사니까 선생님이 될 수 있었던 건가?
희란:(모든 말의 중간을 한 번 끊지도 않으며 무언가를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어렸다면 시비 이상으로 듣지 못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묵었다.) ⋯⋯고원우.
넌 그리워 하는 게 하나라도 있어본 적 있니?
고원우:무언가를 그리워 할 만큼 오래 산 건 아니거든요~. (장난스럽게 말하고서 잠시 입 다물었다.) ⋯⋯이전에 말했잖아요? 내가 나고 자란 곳이 딱히 그립게 느껴지진 않는다고. 차라리 내가 이곳에서 처음 본 것들과 헤어지게 될 때 오히려 그리움을 느끼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뭐, 다 추측이지만.
희란:내가 일부러 피곤하게 사는 건 아니야. 그냥 그럴 수밖에 없던 거지. (어조는 여상했다.) 그리워한다는 건 잃었기에 생기는 감각이고. 너는 아직 제대로 잃어본 적이 없구나.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는 걸지도 모르고.) 네 추측에 감상 하나를 더 얹자면⋯ 역시 네게도 놓지 못할 것 하나쯤 생긴다면 좋겠네.
뭐, 그런 이야기는 일단 됐고⋯ 더 말할 거 없으면 '지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같은 거나 물어보던지 해라.
고원우:⋯⋯. ('제대로 가진 게 뭔지도 모르니까!' 생각은 이리 튀고 저리 튀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것 만큼은 평온하고 또 가볍다.) 그런 게 생기면 도망치고 싶을 것 같아요, 그보다 훨씬 더 무거워지지 않도록.
'지금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이렇게 말이에요?
희란:아, (무언가 깨달았다는 탄성.) 그런 감상 전에 넌 뭘 제대로 잘못 만나는 게 좋겠다는 감상을 먼저 해야 했군⋯⋯.
그래, 그거에 대한 답은 죽은 요괴나 나올 것 같다는 곳 대신 조금 더 볼 만한 곳 보여주러 가는 중이다.
M:말을 얹자면, 지금 향하는 방향은
별관 쪽입니다.
목적으로 하는 장소에 도착하자 신당이라고 굵게 쓰인 현판 주변에 붉은 축제 등이 둥실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M:담홍색 벽과 기둥 위엔 흐릿하게 벽화가 새겨져 있고, 오색 끈과 굵은 밧줄로 화려하게 장식된 신당 한가운데 석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신관으로 보이는 요괴가 당신을 보며 온화하게 미소짓습니다.
희란:여긴 안 무섭겠지. (무섭다 하면 자존심이 좀 상할 것 같다.)
고원우:무섭다고 해서 반응 보고 싶었는데 참을게요. (신관으로 보이는 요괴에게 인사를 하며 친근하게 대한다. "저희 누나랑 같이 왔어요~." 그리 이야기 하는 것은 덤⋯.)
(자연스럽게 시선은 벽화로.)
희란:너 아직 나한테 쥐어박힌 적 없구나⋯⋯. (주먹 꾹.)
M:수많은 돔을 그린 벽화입니다. 돔 내부엔 각양각색의 세계가 자리 잡아 기묘한 상상화처럼 보입니다.
거대한 우림, 구름 위 도시, 기계적인 우주, 진주를 녹인 바다⋯⋯. 벽화는 군데군데 지워졌으나, 남은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인 광경입니다. 돔 주변에는 검고 넘실거리는 어둠과 새까만 개들이 배회합니다.
문득, 당신은 이질적인 부분을 하나쯤 발견합니다.
신관은 드물게도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요괴라는 것을 증명하는 건 뱀의 동공과 비늘, 갈라진 혓바닥 정도겠습니다.
고원우:(이질적인 부분을 뚫어지게 보다가⋯.) 저 분은 인간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소곤소곤.)
M:이질적인 부분을 자세히 보자,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문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알 수 있겠죠.
당신의 모국어니까요. 모국어로 작은 문구 하나가 쓰여져 있습니다.
고원우:이런 걸 쓸 줄 아는 사람이 있다고⋯⋯? (빤히⋯ 빤히⋯.)
<이 글을 보는 당신, 사냥개를 조심하세요.>
희란:너도 지금은 요괴라고 해도 믿을 걸. (태연히 대꾸하며 고개를 신관에게 까딱였다.) 오늘은 별 일 없었나요?
고원우:(눈 가늘게 뜨고 보다가 질문 하나 적립해두고 신관 답 기다림⋯.)
신관: 아, 물론이죠. 희란 님은 오늘도 기도하려 오셨나요? 동생이 있으신 줄은 몰랐는데.
고원우:저희 친해요. (잡고 있는 손 흔들흔들.)
그런데 혹시 여기 개 키우나요?
신관: 우애가 참 좋으십니다. (차분한 미소.) 그리고⋯ 개 말인가요? 신전에선 굳이 키울 필요 없죠. 신성한 생물이기도 하니까요.
고원우:감사합니다. 맞아요, 귀엽기도 하고~. (신성한 생물인데 인간만 공격하고, 뭐 그런 건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상도 들여다봄.)
희란:⋯⋯개가 귀엽나? 난
그게 귀여울 것 같진 않은데.
희란:얜 진짜 후환이 안 두렵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고.
M:방울방울 정체 모를 거품이 모인 것을 굳힌 듯, 기괴하고 영문 모를 형상을 본뜬 석상입니다. 분명 완전하게 굳은 석상인데, 번들거리는 표면 위로 계속해서 거품이 피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피어오릅니다. 고원우, SAN 판정 진행해주세요. (0/1)
고원우:SAN Roll기준치: | 48/24/9 |
굴림: | 2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드라이아이스 같은 건가⋯⋯? (멍청.)
신관: 아, 희란 님의 말씀은 확신히
사냥개 이야기일 겁니다.
그 존재는 그분의 번견이니까요.
고원우:사냥개, 번견, 존재⋯⋯. (어렵다.)
('설명해줘⋯.' 같은 얼굴로 봄.)
희란:그러니까,
그분은 여기에서 모시는 신이고, 내가 말한 사냥개는 그 존재의 뜻을 실현하는 신적 존재라고, 바보야.
뜻에 따라 세계의 질서를 수호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에 앞장선다. 뭐, 그런⋯⋯.
신관: 종종 이 세계에 나타나 악을 배제한다고도 하죠.
물론 사냥개를 본 자 중 살아남은 이는 없으니 단순히 전해지는 이야기지만요.
희란:그래, 그렇지. (이래도 귀엽냐는 듯 본다.)
고원우:그럼 그 신적 존재를 조심하라고 하는 건가⋯⋯. (그런데 왜 조심하라고 하는 거지? 난 악이 아닌데. 의문은 깊어만 간다.) 아뇨, 조금 무서운 것 같기도.
희란:누가 개를 조심하라고 하기라도 했어? (고개 기울였다.) 그럼 이제부터 알아서 무서워하도록.
고원우:제가 살던 곳에서 쓰는 언어⋯ 가르쳐 드릴까요? (벽 가리킴.) 저건데.
희란:(벽 바라봄.) 음⋯. (잠깐 고민하다 반쯤 농담조를 뱉는다.) 혹시 그림으로 글을 쓰는 거야? 좀 곤란하다⋯⋯.
고원우:얼마나 체계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길래 그런 말을. (나라에서 딱히 받은 건 없지만 애국심은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
희란:일단 몇천 년 정도 묵었겠지. (뭐 불만 있어? 라는 듯 눈 치켜뜬다.)
고원우:만들어 진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거죠. (다른 이야기로 새다가⋯.) 아무튼, 그렇게 적혀져 있었어요. 사냥개를 조심하라고.
희란:너희 쪽의 글자로? (앞서 한 농조의 가벼움과 다르게 자세히 보기라도 하려는지 몸을 살짝 굽힌다.) 여기에 그런 걸 적어둘 수 있던 인간은 하나 정도지. 그리고 그걸 생각하면⋯⋯
⋯실제로 조심하는 게 좋겠네.
고원우:⋯⋯다른 곳으로 갈래요, 누나. (괜히 신관 옆이라 ㅠ.ㅠ 얼굴로 치근덕.) 무섭다~.
희란:웃겨, 정말. (신상을 보고 잠시 고민⋯.)
매일 들르셨지 않습니까. 어제는 무슨 일인지 안 오셨으니 오늘은 기도하고 가실 줄 알았는데요.
고원우:('왜 이렇게 부지런해요?!' 입만 벙긋벙긋.)
희란:(신관과 원우 번갈아 봄.) ⋯⋯너는 뭐 빌 소원 없어? (시선이 굴러갔다⋯.)
고원우:경기 회복, 물가 안정, 노사 평화⋯⋯? (아니다.)
희란:하나도 개인적인 소원이 아니잖아. (익숙하게 신관에게 손을 내밀어 붉은 종이를 두 장 받아든다.) 3분만 더 있다 가자. 어제 빠트려먹어서 마음이 조금 그렇기는 하니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서 소원을 적으면 오색 끈에 매달 수 있거든. 물론 난 이제 평소에는 안 하긴 하지만.
고원우:저도 어느 정도 혜택은 받겠죠, 뭐. 어머니도 좋아하실 테고⋯⋯. ('역시 고생하는 타입이다.' 실례가 되는 생각을 한 후 종이를 받는다.) 하긴, 매일 빌어야 할 소원이 있다면 직접 해결하러 나서는 게 빠르긴 하겠네요. (종이에 끄적끄적⋯.)
여기서 빌었던 게 이루어 진 적 있어요?
희란:너 혼자만 좋아할 수 있는 걸 바라보라고. (가볍게 으쓱이고 종이를 팔랑인다.)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거면 소원이 되지 않겠지. 그냥⋯ 종이에까지 적어 매일 매달기엔 누구든 지겨울 것 같아서 그건 그만둔 거야.
뭐, 그러니까⋯ 답은 내가 굳이 더 말 안 해도 알겠지?
신관: 그래도 의외로 많은 분들이 소원 하나쯤 매달고 가신답니다. 정해진 양식이 꼭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소원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요. 다만⋯ 소원은 입 밖으로 내거나 남에게 보이면 효력을 잃는다는 점만 명심하시면 될 것 같네요. (옆에서 평온하게 덧붙여줌.)
고원우:맨날 어려운 것만 혼자서 해보라고 해⋯⋯. (다 들리게 중얼중얼. 그러나 종이는 반듯하게 접는다.) 다 했어요.
희란:보통 불만은 당사자한테 안 들리게 말하지 않냐. (접힌 종이를 흘긋인다. 제 종이를 내려다보더니, 한 문장을 적고 종이를 접었다.) 이것도 오랜만이네⋯⋯. 그러면 매달까?
고원우:네, 여길 떠날 때도 소원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신 매달아 주는 걸까? 순순히 종이 내민다.)
희란:어떤 소원이길래 그런 말을 하나 모르겠네. (종이를 받아 끈을 잡아당기더니 차례로 매듭지어 매단다.)
고원우:소원은 입 밖으로 내거나 남에게 보이면 효력을 잃는다고 했어요. (입 꾹 다문다.) 누나는 어떤 소원 빌었어요?
내용 말고⋯ 평생 바라던 거라던가, 사소하다던가, 그런 거 있잖아요.
희란:너도 하나도 안 말했으면서. (시선은 매단 종이 끝에 머문다.) ⋯⋯그동안 안 빌었던 걸 빌었어.
아주 사소하고 이건 이루어질 만도 할 것 같은 거.
고원우:저와 어울리지 않는 소원은 빌지도 않거든요~, 그냥⋯ 뻔한 소원이나 적었죠, 뭐. 누나 소원은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먼 훗날에 이루어 졌을 때 저도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벼운 투정.)
희란:소원에 뻔하고 아닌 게 어디 있니? (손 뻗어 가볍게 이마 민다.) 당돌한 소리는. 난 여기 온 기념으로 네 소원이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여행객의 행운~ 그런 게 하나쯤 있을 수 있잖아.
아무튼, 이제 무섭다고 한 꼬맹이의 바람을 들어주는 겸 다른 곳이나 가볼까. (신관에게 고개를 까딱이고 한 걸음 앞섰다.)
M:다시 한 번 안내하자면, 축제 내에서 갈 수 있는 구역은 이제
노점상, 사격장, 식당가, 점집, 간이 낚시터 입니다.
고원우:혹시 모르잖아요? 여긴 좀 그런 쪽이 뛰어나 보이기도 하고⋯. (뭐가?)
희란:어이없어. 오냐, 성실히 안내해주마. (이끌듯 성큼성큼.)
M:걸음의 끝에 요괴가 멈춰선 곳은 두꺼운 비단 커튼이 드리운 곳입니다.
희란:아는 사람이 하는 곳이거든. 뭐, 점괘 자체는 믿을만할지도⋯⋯.
물론 크게 신용하지 않는 편이 언제나 좋긴 하겠지만 말이야. 점괘는 어디까지나 점괘. 알고 있지?
고원우:네. (뭐든 물어볼 것 같은⋯ 호기심 많은 얼굴.)
희란:하나도 모르는 것 같은데⋯⋯. (한숨 한 번 내쉬고 커튼을 걷어 들어간다.)
M:두 사람이 점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삿갓을 쓴 사람이 보입니다. 삿갓을 쓴 사람은 곰방대를 들고 있습니다.
아니, 들고 있더니⋯⋯
"쓰였네! 아주 단단히 쓰였어!!"
⋯⋯라며 곰방대를 내려칩니다.
뭐가요?!
삿갓을 쓴 사람:그런데 인간이 여긴 어쩐 일이라니? 희란:봐, 믿을 만은 하잖아. 쿠라마 할멈, 요새 많이 심심해?
M:삿갓을 쓴 점집의 주인은 가볍게 웃으며 삿갓을 벗습니다. 삿갓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새하얀 머리카락의 미인입니다.
⋯⋯ 그리고, 언뜻 뒤로 비치는 그림자를 바라보면 꼬리가 여러 개 달려 있습니다.
M:점집 안에는 대충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망원경이나, 샛노랗게 색이 바랜 고서들, 용도를 알 수 없는 측량 기구들⋯⋯.
희란:넌 그런 소리를 할멈한테 해서 뭐 하냐? (어이없다는 감정 온 데에서 티를 낸다.)
고원우:예쁜 사람보고 예쁘다고 하죠⋯⋯. (억울.)
희란:너 나한테는 안 했잖아. (양심 부족.)
고원우:가족끼리 그런 칭찬 주고 받는 거 아니에요.
희란:⋯⋯와, 이렇게 말이 막히긴 또 오랜만이네.
희란:뭐가 좋다고 웃어, 웃기는! (투덜투덜투덜⋯.)
고원우:⋯⋯얼른 뭐라도 좀 봐주세요. (주제전환.)
쿠라마:아하하, 희란이는 언제 또 인간을 가족으로 삼았나? 재밌는 아이로구나. 아가야, 걱정하지 마라. 희란이 성질을 좀 낸다고 인간을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물론 이 할멈도 말이지.
여기 숨어있는 것도 아늑하겠다. (훈훈한 분위기?)
희란:왜, 담당자라도 할멈으로 바꿔 주랴? (긍정하기만 해 봐라.)
희란:아, 왜 붙어. 여기 숨고 싶다며. (떼어내진 않음.)
쿠라마:그래도 좋아 보이는 걸 왜 그러니. 아, 그래, 아까 뭐라도 봐달라고 말했지. 뭐가 보고 싶어서 왔더냐? 희란:여기나 저기나 학생들은 다를 게 없군⋯⋯.
희란:너 내가 좀 덜 외롭게 살면 좋겠다 한 거 이렇게 써먹는 거냐.
고원우:그렇게 살지 않도록 여기서는 도와주신다는 거 아니었어요? 적선한다 생각하세요.
희란:아오, 누가 그런 표현 쓰래?! 하⋯ 내가 본다, 봐.
쿠라마: 희란이가 이렇게 휘말리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닌데, 아주 임자를 제대로 만났구나. 구경으로도 재밌네, 재밌어.
어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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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재밌는 운세로군⋯⋯. (천칭처럼 보이는 것을 조정하며 감탄사를 뱉는다.) 어디에서나 엉켜 있는 곳의 가운데 존재했구나. 얽히고 섥힌 탓에 정작 본인의 연애는 제대로 흘러가본 게 없었겠어. (진짜 카드임.)
하지만 굴레가 돌고 돌아 결국 제 결과를 되찾길 마련이지. 네게 너무 많은 것이 존재한다 해도 그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야. 얽히다 못해 엉켰다 해도 결국 시작은 하나인 법⋯⋯. 너는 찾아낼 수 있단다.
이건 길게 푼 말이고, 연애운은 나쁘지 않구나. 지금까지도 마음만 먹으면 됐었겠는데?
고원우:⋯⋯일단 수능부터 치는 게 맞겠다. (의외로 나쁘지 않은 운세가 나오자? 표정 밝아짐.) 수능이라는 게, 그러니까 과거 시험 같은 건데요⋯⋯.
이걸 합격⋯ 해야?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연애를 잘할 수 있어요. 네.
희란:아아, 그러니까 시험을 위해서 수많은 것들을 그냥 헤쳐나오고 있다? (비죽 웃음.) 이야, 대단한데?
지금 많이 웃어두세요. (ㅋㅋ)
쿠라마:오냐, 이제 우리 희란이를~. 허어, 내가 희란이를 데리고 이런 걸 볼 줄 몰랐는데, 죽기 전에 재밌는 경험 해보는구나. 51
아하하, 이런 결과가 이어서 나오는 것도 우스운 일일 텐데 말이지.
(천칭을 고정시킨다.) 네 눈 앞의 세상을 단조롭게 우겨 모았구나. 어쩌면 볼 필요가 없다 생각하면 굳이 보지도 않는 모양이지? 알 만도 하지 않니.
고원우:(용하다⋯ 옆에서 고개 열심히 끄덕임.)
희란:(아 진짜 어이가 없다⋯. 원우 볼이나 살짝 꼬집음.)
쿠라마:행동의 원리는 간단한 법칙을 따르고, 그건 네 피로와 연관성이 짙을 게야. 그도 그럴 것이 네 스스로가 의도한 것에 가까울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탓에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구나. 어쩌면 네 자신에게도 말이야.
운세는 마찬가지로 나쁘지 않지만⋯ 그것도 네가 좀 마음을 여는 게 필요하다 한단다.
희란:할멈, 그냥 한 문장으로 줄여. 미사여구 그만 붙이고.
쿠라마:성질은⋯⋯. 좀 더 가능성을 상정하고 세상을 봐라. 됐니? 고원우:결과적으로 안될 거라고 생각해서 진짜 안되는 세상이 된 거네요⋯.
고원우:나쁘지 않다고 하잖아요, 그대로 믿어볼게요. (만족.) 다른 것도 볼 수 있어요? (이제서야 메뉴판을 본다고?)
쿠라마: 오오, 물론 이것 말고도 여럿 볼 수 있지. 기본적인
운세부터
미래 예지, 흠⋯⋯ 연애 같은 관계운에 관심이 많은 거면 거,
궁합같은 것도 봐줄 수 있고. 볼 건 다 봐주마.
고원우:인간과 요괴라고 궁합 못 보는 건 아니죠? (질문.)
쿠라마:물론 당연히 아니지! 인간과 요괴라고 못 볼 게 뭐람. ('보자.')
쿠라마:(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 그래. 내가 이런 것도 다 봐줘야지. 쿠라마:(천칭과 같은 것을 한 바퀴 돌리고, 기울기를 조정했다.) 후후⋯⋯. 이것 참. 인연이란 항상 기구하지만 그렇기에 귀중한 법이지⋯⋯.
쿠라마:바로 곁에 찾아 헤메는 것이 있음에도 찾아야 하는 것은 아직 멀구나. 쿠라마:찾는 상대도 찾아야 하는 상대도 갈 길을 잃어, 정확히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확신할 길이 없어⋯⋯. 그래도 찾은 것이 있고, 찾을 것이 있으니,
⋯⋯이 점은 못 본 거로 하자구나.
희란:(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 시선을 옆으로 둔다.) 넌 팔자도 좋다⋯⋯.
고원우:제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건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가면서 본다.)
희란:못하는 게 아니라?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치고는 태연한 낯짝.)
고원우:그런데 궁합을 봐달라고 했는데 한 문장으로 요약해주시면 안돼요? 최악인 거예요?
그래서 덮으시려고 하는 거고?
요약해야 한다면 꼬이고 얽혀 오래도록 바랠 인연 정도로 하자구나.
희란:어이, 할멈. 헛소리 길게 했으니 쟤 운세나 좀 제대로 봐줘 봐라.
(조상 소리 또 하려다가 참음.)
희란:너 나랑 눈을 안 마주친다? (따라감.)
쿠라마:아아, 그래. 운세 말이지. 어디 보자⋯⋯. 쿠라마:호오, 제법 운명적인 만남을 겪는 중이구나. 이미 겪었나? 아니야, 겪고 있기도 하고⋯⋯. 쿠라마:한둘이 아니야! 제법 인연의 실들이 이리저리 엉켜 있구나. 인간 아이야, 이곳에서의 인연을 제법 귀중히 여겨도 좋을 거야. 여겨드려요?
쿠라마:주책 하나 덧붙이자면, 아예 여기서 사는 건 어떠니? 제법 잘 맞아! (높은 소리로 깔깔거리며 웃음을 뱉었다.) 고원우: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인간이라면 잡아 먹으려고 하는 요괴들이 너무 많아요. 고생도 엄청 했다니까요. (만담.)
희란:뭐 적선이라도 해 주는 것처럼⋯. 네 마음대로 해, 바보 꼬맹아. (투덜투덜.)
그리고 뭘 그렇게 생각해. 돌아가야지. (모든 것에 뒷말 붙이는 중.)
쿠라마:허이고, 희란이는 여전히 성질이 나쁘단 말이지. 이왕 볼 거 다 보는 김에 예지도 한번 읊어주랴? 고원우:네, 기왕 봐주시는 김에 사냥개와 마주칠 지도 궁금해요. (잔소리 무시.)
쿠라마:어허허, 그런 소리 어디 가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아가야. 쿠라마:신적인 존재는 언급하는 것으로도 위험에 가까워지는 법이거든. 간단히 보자면, 흠⋯? 이런 점괘가 나오다니.
조만간 네 주변에 거대한 이변이 생길 거다, 인간의 아이야. 천만다행이게도 네 목숨에 지장은 없겠지만⋯⋯.
쿠라마:⋯⋯이 몸이야 살 만큼 충분히 살아서 괜찮기는 하지. 하지만 너희들은 조심하는 편이 좋겠어. 희란:그래? (무언가 생각하는 눈치.) 뭐, 무엇이든 조심하도록 하지, 할멈.
고원우:그런 말이 어디있어요, 오래 사셔야죠. (물론 지키는 건 나보다 이 사람이 더 잘할 것이다. 희란 봄⋯.)
희란:저 할멈은 저렇게 말해도 자기 몸은 잘만 지켜. 지금까지 살아온 이유가 있다니까? 그리고 너는, 뭐⋯ 네 목숨에 지장은 없다니 됐지.
걱정 마, 뭔 일 있어도 내가 너 하나 못 내보내 주겠니?
고원우:⋯⋯제가 언제 저 하나 죽는 게 미친듯이 두렵다고 했어요? (중얼중얼.) 아무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긴 조심해야 할 게 정말 많은 것 같아요.
희란:그러면 넌 지금 뭐가 제일 두려운데. (고개를 돌려 쿠라마를 본다.) 할멈, 수고했어. 이번의 복채는 뭐로 받을래?
고원우:⋯⋯. (괜히 이 먼 땅에서도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던 사람들이 죽는 게 영 달갑지 않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난 타인의 죽음을 모르는 척 할 수 있을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쓸데없는 걱정 한다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모르겠네요.
복채⋯. (챙겨온⋯ 쪼꼬렛⋯.)
희란:⋯⋯모르는 것도 많지. (한숨 한 번 뱉고 만다.)
쿠라마:역시, 절차를 알 만큼 알아주니 이 할멈은 편하다니까. 젊은 것들이 귀엽기도 하고~. 복채는~ 보통 희란이에겐 값어치 있는 게 많지만, 이번엔 인간 아이가 함께 있으니까 말이야.
역시⋯⋯ (팔을 뻗어 한 곳을 가리킨다.)
목에 건 그걸 주겠니? (가리킨 것은 원우의 넥타이.)
쿠라마:그래, 그거. 인간의 의복은 얇고 간소해서 말이야⋯ 소장 가치가 있거든. 희란:아주 달라면 죄다 벗어주려고? (도끼눈.)
고원우:저한테 잘해주셨으니까 저도 그만큼 드리고 싶은 거죠!
희란:종일 널 챙겨 다니는 내 앞에서 그런 말을⋯⋯?
나중에 싹 다 벗어서 드릴게요. 됐어요?!
고원우:달라고 한 거 아니었냐고요. 귀하다고 했잖아요.
희란:할멈한테나 귀하지 내가 인간 옷에 수집벽이라도 느낀다니?
죄다 벗어줄 것 같으니까 너 그러면 나한텐 어쩔 건데, 그랬던⋯ 거지⋯⋯. (말하다 보니 좀 유치한 것을 자각했다.) 아니, 정말⋯⋯. (꿍얼꿍얼꿍얼.)
고원우:⋯⋯방금 본인이 말하고도 유치하다는 거 알아챘죠? 나 참⋯. (잠시 침묵.) 알았어요, 누나한테 주게 될 것은 진지하게 고민한 후 결정할게요. 기대해도 좋아요.
희란:너 이럴 때만 눈치 빠르고, 아주⋯⋯. (부정은 않는다.) 아, 아니⋯. (말문이 막힌 채 바라봤다.) 네가 줄 게 어디 있다고, 정말로⋯.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두고 볼 거야, 알았어?
고원우:네, 네. 잊어버리고 계세요. (이전부터 날 뭘로 보고 있는 거지? 황당하다.)
자, 자! 손님들도 기다리고 있고, 너희도 할 게 많을 텐데 슬슬 나가보렴.
둘 다 즐거운 축제 기간 보내거라!
희란:할멈은 좀 모른 척 좀 해보라고⋯⋯. (좀 부끄러웠는지 후다닥 나감.)
고원우:(눈 앞의 거대한 분홍빛 고양이 봄.) 물고기 잡아 줄까요?
고원우:⋯⋯미끼를 건다, 흔들리면 잡아 당긴다? (진심?)
희란:흐흠, 뭐어⋯ 축제에서는 금붕어 정도나 낚게 시킬 테니까. (자연스럽게 앞장선다.)
M:간이 낚시터에는 뾰족한 기와 아래 매달린 금붕어 그림의 풍경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종소리를 냅니다. 새로 길은 듯 맑은 물이 대야에 담깁니다. 그 위에는 색색의 다양한 금붕어들이 떠다닙니다.
다만⋯⋯ 다만, 전부 뾰족한 이빨을 지니고 있어 이런 것에 미숙한 사람이라면 분명 손목째로 먹혀버릴지도요.
뭐 문제 있어? (정말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듯.)
고원우:(그물을 쓴다고 해서 안 다치는 건 아닐 것 같은데?!)
기도라도 하고 해야 하나⋯⋯.
낚시터 직원: 금붕어 낚시 해보시는 거면 그물 지급해 드릴까요? (호객 행위 시작함.)
희란:네, 뭐. (자연스럽게 대금 쥐여주고 그물 두 개 받았다.)
너 겁도 많구나. (그물 들고 원우 흝어보듯 견적 스캔 다 헀다.)
고원우:겁이 많은 게 아니라⋯⋯. (자신이 살던 곳에 있었던 금붕어를 떠올린다. 뻐끔거리며 사람을 응시하는 게 참 귀여웠는데 어쩌다 이런 형태로 진화하게 된 걸까?)
⋯⋯아니에요, 해보죠.
희란:약하고, 겁도 많고, 변명도 많고⋯⋯. (누가 쟤 데리고 살아주지?) 걱정이다 걱정!
어? 금붕어 정도야 이렇게⋯ (대야에 손 넣고 챡. 하나 낚는다.) 이걸 못 해서야 어디⋯⋯. (뒷말이 안 했는데도 들린다. 꼰대.)
고원우:나중에 만나지도 못할텐데 걱정을 그렇게 많이 해서 좋을 게⋯ 네? (내가 실로폰 챙겨 나갈 때 곰방대 챙겼을 것 같은 이 꼰대스러움 뭐지?)
(그물 냉큼 잡고 본인도 시도해봄.)
희란:어? 못 보니까 걱정을 하는 거지. (그 옆에서 투덜거리며 구경함.)
M:금붕어 낚기는
민첩으로 판정합니다. 주사위 값에 따라 성공도 판정이 다르게 측정됩니다.
민첩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민첩기준치: | 60/30/12 |
굴림: | 4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조금 헤매는가 싶더니 엄지손가락만 한 붉은색의 새끼 금붕어를 건져 올립니다. 금붕어가 뻐끔거리며 작은 이빨을 벌려봅니다.
희란:그래도 막상 닥치면 처자식은 먹여 살리겠군⋯⋯. (놀랍게도 감탄사다.)
(대놓고 황당하다는 얼굴.)
아 뭔데? 칭찬이라고, 칭찬! (억울한 낯.)
고원우:이상하네요, 제가 아는 칭찬이라는 건 '잘했다'는 말 하나로 끝낼 수 있는 건데⋯ 여긴 좀 다른가봐요.
그런데 진짜 최상급 칭찬 아닌가? 요즘 시국에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는 소리가 얼마나 귀한데 얜 그것도 모르고. (그 뒤로 몇 마디 더 궁시렁댔다.)
고원우:(분홍색 금붕어 찾아서 한 번만 더 해볼까 고민 중임.)
M:해보려면 민첩 판정 rp 선언 후 판정해주세요.
고원우:(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시도해본다.)
민첩기준치: | 60/30/12 |
굴림: | 3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싸.)
M:조금 익숙해졌는데 평탄하게 분홍색 금붕어를 낚았습니다.
귀엽죠?
희란:이름이 과하게 익숙하다? 꼭 어디서 따온 것 같이?
고원우:어, 그런가? 전 잘 모르겠는데⋯⋯. 저 두 마리 낚았으니까 얼른 챙겨주세요. (주인한테 감;)
희란:양심도 없고 뻔뻔하지. (그 사이 검은색 금붕어 낚아서 총총 뒤따라간다.)
M:주인이 금붕어를 받아 포장해주는 걸 구경하다 보면, 바로 근처에 익숙한 인물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M:붉은 털을 가진 자그마한 영월호 학생입니다. 척척 금붕어를 잡고 있네요.
그러고보니 이 녀석은⋯ 나무에서 봤던 요괴 아닌가요?
희란:(뭘 보나 옆에서 보다 누군지를 확인했다.) 쟤도 금붕어 잘 낚네.
고원우:모르는 척 하는 게 좋겠죠? (소곤소곤.)
희란:왜? 저래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인데. (성큼성큼.)
얘, 금붕어 잘 잡는구나. (요괴 어깨에 손 올렸다.)
고원우:멋지네~. (자연스럽게 따라서 아는 척.)
미호: 누구⋯⋯ 어, 아, 아⋯⋯? 선생님?! 그, 그리고 선, 아니, 인가⋯⋯
넌 어디 소문낼 거 있니? (다시 놓아준다.)
미호: 아니, 하, 선생님⋯⋯! 아니, 인간이, 하.
미호: 그거야 아홉 마리도 넘지, 아니. 그보다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고원우:이거 달았는데 어떻게 알아보는 거예요? 만능이 아닌가? (소곤소곤.)
희란:그거야 얼굴이 똑같잖아. 바보 아니야? (소곤소곤.)
미호: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아니, 선생님이 데려오신 거예요⋯⋯?!
왜요? 선생님을 닮았다고? 아니, 잘 보니 하나도 안 닮았는데? 아닌가? 아닌데. 안 닮았는데?!
처음 봤을 땐 닮은 것도 같았는데, 보면 볼수록 안 닮았는데?!
고원우:너희 선생님이 날 선택하신 거야. (의미심장;)
미호: 아니, 아니! 우리 선생님은 그렇게 안 친절한데?!
그런데 여기서 그런 말 해도 돼?
미호: 어? 선생님. 인간이라고 다 이수 선생님을 닮은 게 아니잖아요. 아니, 애초에 닮아도 잘 안 해주실 것 같은데? 선생님?!
고원우:이수 선생님? (여기 교육 트렌드는 누구 앞에서든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게 만들자는 건가?)
미호: 넌 그것도 몰라?! 역시 인간이란. 선생님이 잠깐 데리고 다녀주시는 거군.
고원우:그게 누군데? (은밀하게 주전부리 건네며 거래 시도함.)
미호:(주전부리 자연스럽게 받아들었다.) 허, 내가 뇌물을 주면 다 말해줄 줄 알고?! 이수 선생님은 영월호를 다시 세운 선생님이야. (말해줌.)
미호:그야 아무것도 제대로 안 남아 있었지? 사실 나도 기억엔 없지만. 고원우: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 (소곤소곤.)
미호: 지금은 사라지셨다고 들었는데⋯⋯ 내가 어릴 때라 기억이 흐리긴 해. (소곤소곤.)
고원우:호오⋯⋯.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희란 봄. 굉장히 무례함.)
미호: 어쩌면 인간이니까 수명이 다한 건지도 모르지! 인간은 수명이 짧다던데.
희란:(다 듣고 있었다.) 보는 시선이 무척 불손하다⋯⋯.
고원우:맞아, 백 년 정도 살면 인간은 오래 사는 거니까. (끄덕끄덕.)
희란:그리고 미호, 넌 먹을 걸 쥐여준다고 별 걸 다 말해주면 어떡하니?
얘는 식탐을 좀 줄여야 할 텐데 말이야. 졸업 시험 안 잊었지?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제가 부탁한 건데.
희란:에휴, 됐다. 원우 넌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나 물어보고.
미호: 그나저나 인간, 꽤 잘 놀고 있는 것 같네. 인계에도 이런 축제가 있던가?
고원우:인간이라고 일만 하는 건 아니야, 축제는 사람과 음악이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잖아.
미호: 인간은 우리랑 좀 다르게 놀 줄 알았지! 선생님 취향이 인간 취향이면.
고원우:축제가 다 똑같지, 뭐. 너 그거 편견이야.
흠, 가볼 곳 추천해 줄 수 있어?
미호: 아 진짠데, 희란 선생님한테도 물어봐!
뭐, 가볼 곳이라면⋯ 난 지금 신당 갈 거야. 축제 때 드려야 하는 기도를 못 드렸거든. 헤헹, 물론 영월호 내부에 있으니 인간은 못 오겠지만.
(희란 봄 ㅋㅋ.)
고원우:저 아직 별말 안 했는데요. 그나저나 추천을 받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 낚시 말고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희란:흠⋯ 기념품이라도 사고 싶으면 노점상들 구경해도 괜찮고, 아니면 식당가라던지⋯⋯ 난 사격장 좋아해. (그렇겠지 싶다.)
미호: (그 사이 의도가 안 통해 억울한 얼굴.) 왜 안 부러워하지?!
음⋯⋯.
와, 너무 너무 부럽다.
미호: 너어,
공간의 주인님이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것 같은데!
희란:(미호 흘긋 보다가.) 사격장에야 당연히 상품이 있지. 인계는 없어?
고원우:아뇨, 여기도 비슷한가 싶어서. 그럼 거기로 가요.
공간의 주인님?
공간의 주인님은 이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야!
어? 너 그러면 이것도 모르겠네. 이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아는 건데. 역시 인간이란!
희란:미호⋯ 누가 남한테 그렇게 굴라고 했지? (도끼눈.)
저는 모르면 알려주려고⋯⋯! (급하게 변명중.)
희란:나는 몰라도 다른 선생님이 이걸 보면 슬퍼하실 거야.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시는지 알잖아?
물론 네가 아직 어린 요괴인 건 알지만, 그래도 요새를 생각하면 조금 더 성숙한 행동을 보여야지.
언제 누구한테 도움을 받을 줄 알고⋯⋯. (이후 잔소리 5분쯤 더 했다.)
미호: (지쳐서 어깨 축 쳐진 채로 사탕 쥐고 있음.) 인간이 모르는 걸 알려줄게⋯⋯.
그러니까, 이 세계의 끝은 평평하고, 하늘의 끝에는 둥근 유리 돔이 있고⋯⋯.
미호: 그래! 역시 이런 걸 모르다니 바보잖아! 선생님은 왜 이런 인간 편을 들어주는 거람! (털을 바짝 세우더니 도망친다.)
희란:미호, 너⋯ (이마 짚고 한숨 푹 쉰다.)
⋯⋯애가 아직 어려서 그래. 졸업시험 예정자들 중엔 막내나 다름이 없거든.
고원우:괜찮아요, 그것보다는 마저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희란:더 말할 것도 없이 저게 사실이야. 우리의 세계는 그런 곳이니까.
생명체가 살아 숨을 쉬는 공간에 끝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고원우:혼의 순환 같은 건 믿으면서 공간에는 마땅히 끝이 있어야 한다고 해도 돼요? (이 기묘한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문 채 고민하다가⋯.) ⋯⋯그냥 처음부터 그랬던 거예요? 한 번도 달라진 적 없이?
희란:그거야, 끝이 존재하기에 시작도 존재하길 마련일 테니⋯⋯. (문장 하나를 내뱉고 잠시 소리를 잃었다. 소리를 잃었으니 생각은 닿지 않는다. 누군가는 읽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만은 아니기에⋯⋯.) 아마도. 그걸 전부 알 정도로 내가 전능한 존재는 아니니까.
고원우:꼭 실험실 같아서 그래요, 특히 하늘의 끝에 있다던 그 유리 돔이. (신은 왜 이런 세상을 창조한 걸까? 의문만 깊어진다.) ⋯⋯어쩐지 파고들면 안될 것 같긴 하지만⋯.
원래 하늘은 끝이 없거든요. 적어도 제가 살고 있던 곳에서는 그랬어요.
희란:그래도 누가 살고 있는 곳인데, 평가가 신랄하네. (그러나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늘이 끝이 없다면⋯ 언제까지나 이어지나?
고원우:네, 그래서 그곳에서는 먼 길을 떠나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에 있기 때문에 위안을 얻곤 해요. (하늘을 짧게 올려다본다.) 그래서 보이지 않았구나.
희란:그것 참⋯ 나쁘지 않은 세상이네.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곧 고개를 되돌린다.) 그런 위안이 필요했던 적 있어?
고원우:그건⋯⋯. (이 하늘 아래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 하나쯤은 있겠거니 하며 살아온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지간히 그 세계에 감성적이었구나 싶어 괜히 민망해진다⋯.) ⋯⋯설마요. 그런 적 없어요, 둘러보면 널린 게 사람인데.
희란:흐음. (관찰하듯 응시한다. 인간과 요괴의 세계는 대화에서 알 수 있듯 현저히 다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들은 어딘가 닮은 감이 있다. 가벼운 걸음을 옮겨 앞서 나가더니 작게 웃는다.) ⋯너 거짓말도 못 하는구나. 못 하는 게 많네.
고원우:그런 적 없다고 했잖아요⋯! (뒤를 졸졸 따라간다.)
희란:내 눈 보고 똑같은 소리 할 자신 있어? (대답 들을 생각도 없이 한참 앞서 감.)
M: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요괴가 어디를 목표로 했는지 훤히 알 수 있는 장소가 보입니다.
사격장에는 다양한 경품이 보입니다. 이런 사격장은 안계의 놀이공원에서도 꽤 자주 볼 수 있었죠.
다만 사격장에 놓인 것은 총이 아니라 활입니다.
희란:(사격장 도착하자 그제야 멈춰선다. 실이 없었다면 정말로 곤란했을지도.)
고원우:제가 인간이라는 것을 제일 잘 까먹는 건⋯⋯.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 돌렸다.) 활이네요? 총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걸⋯⋯.
(경품 봄. 뭐가 있지?)
희란:뭐, 올 수 있게 실 묶어줬잖냐. 아까처럼 손 잡고 가주랴? (뻔뻔.)
어린 요괴도 활 정도는 한 번 쏘아본 적 있을 텐데, 인간은 곤란한가 보네?
M:여러 경품이 있지만, 주로 인형들이 눈에 띕니다. 노리개 등의 장신구도 있습니다.
고원우:(일단 활을 제대로 들 수 있기는 한가? 한 번 잡아봐도 되나?)
고원우:근력기준치: | 70/35/14 |
굴림: | 99 |
판정결과: | 실패 |
(털썩⋯.)
희란:완전 아기 고양이네⋯? (주인 있으니 다른 표현 씀 ㅋㅋ)
주인:아이고, 일행 분이 연약하신 모양입니다? 하하!
(하⋯⋯.)
희란:괜찮아. 네 연약함을 그렇게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고원우:얼른 활이나 한 번 쏴봐요. (주제 돌림.)
희란:겁도 많고 거짓말도 못 하고 연약하기까지⋯. (할 말 다 하면서 가볍게 활 든다.)
주인:화살은 인당 5개고, 더 시도하시려면 참가비를 새로 내주셔야 합니다!
희란:(활을 자연스럽게 들어 화살을 시위에 메겼다. 과녁을 겨냥한다. 첫 화살이 시위를 떠난다.)
정신기준치: | 70/35/14 |
굴림: | 62, 20, 88 |
+2: | 어려운 성공 |
+1: | 어려운 성공 |
0: | 보통 성공 |
-1: | 보통 성공 |
-2: | 실패 |
우와⋯.
M: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 중앙에 명중합니다.
주인:역시 희란 님이시군요. 어릴 적부터 매번 사격장을 휩쓰시고 상품도 안 받아 가시던 경력 어디 안 가십니다!
어릴 적이면 몇 년 전이에요? (주인 바라봄.)
그야 몇백 년⋯⋯.
고원우:언제부터 사격장에 왔나 해서, 저희 누나가. 아~.
이번엔 상품 받아갈 거거든? 저 인형 줘, 아저씨. (인형 하나를 가리킨다. 원우를 닮은 까만 인형.)
주인:네, 네. 이때까지 안 가져간 값이 있으신데 얼마든지 드려야죠. (인형 가져다 준다.) 희란:옛다. 너 닮았네. (자연스럽게 안겨줌.)
희란:뭐 불만 있어? 닮았잖아. (고양이 인형이다. 까만 고양이.)
고원우:잘 모르겠는데요. (활 다시 한 번만 들어봄.)
고원우:근력기준치: | 70/35/14 |
굴림: | 5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헉헉. 겨우 들었다.)
희란:허이고⋯ 뭐 노리는 상품이라도 있냐? (제 팔짱 낌.)
하나만 보고 해보려고요⋯⋯.
(과녁 중앙 겨누고 한 번 쏴본다.)
고원우:정신기준치: | 50/25/10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과녁에 화살이 맞기야 했지만, 중앙과는 한참 빗나갑니다. 보고 있던 주인의 웃음소리가 울립니다.
⋯⋯. (노려봄.)
주인:아하하, 희란 님의 옆에 서시려면 한참 노력하셔야 하겠는데요? (태연함.)
희란 님이 누굴 옆에 끼고 온 건 정말 오랜만인데, 취향이 남다르십니다?
예전에 다른 사람도 데리고 온 적 있었어요?
주인:그럼요. 물론 그때는 요괴가 아니고 인간이니 약한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요.
그때는 인간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희란 님 취향이⋯⋯?
주인:그럼요, 그럼요. 그냥 어릴 적부터 희란 님을 본 아저씨의 주책이죠.
고원우:약한 사람 좋아하는⋯⋯. (소곤소곤.)
희란:너 자신감이 무척 넘친다⋯⋯? (황당한 얼굴.)
아니, 되게 자연스럽게 내가 널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허, 거참.
지금까지 많이 봐주고 계시잖아요,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인형 꽉 끌어안음.)
희란:아, 진짜⋯. (반박도 못 하고 우뚝 선다.) 가지고 싶은 게 뭔데⋯⋯.
고원우:누나 닮은 인형이 가지고 싶어요. 잘 때 나쁜 꿈도 안 꿀 것 같고. (반짝반짝.)
희란:너 닮은 인형은 나쁜 꿈 꿀 거 같냐고. (그렇지만 활은 들어준다.)
정신기준치: | 70/35/14 |
굴림: | 17, 85, 45 |
+2: | 어려운 성공 |
+1: | 어려운 성공 |
0: | 어려운 성공 |
-1: | 실패 |
-2: | 실패 |
M:날아간 화살은 바로 전 중앙에 박힌 화살을 뜷고 과녁에 그대로 박힙니다.
주인:역시 여전하시군요. (그 사이 원우가 가리킨 인형 찾아다 내려뒀다.)
주인:흠, 일행을 데리고는 오랜만에 찾아주셨기도 하고⋯ 참가상 정도는 드려야 맞을 것 같네요.
응?
주인:거기, 일행 분. 장신구 중에 하나쯤 골라보시겠어요?
주인: (상품 매대를 쭉 끌고 오더니 앞에 고정시킨다.) 좋아요, 그러면 여기에서 골라보세요.
고원우:⋯⋯. (유심히 살펴본다. 특별하게 보이는 게 있나?)
M:그래도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해를 끼칠 물건이 있다면 옆의 요괴가 진작 제지했을 것도 같고요.
고원우:뭐가 좋을까요? (희란과 머리 맞대고 고민.)
희란:글쎄다⋯. 네가 끼고 다닐 거 아니야? 너무 화려한 걸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네가.
M:매대의 반지들은 단품부터 한 쌍으로 묶여있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전부 서양품이라기보다는 조각이 되어 있고 작은 보석이 박혀있는 정도의 외견입니다. 화려한 정도도 보석의 수와 크기로 결정되네요.
고원우:⋯⋯. (희란 몰래 한 쌍으로 묶인 반지를 하나 고른다. 검정색의 이름 모를 보석이 조그맣게 박혀 있는 것으로⋯.)
희란:(구경이나 하고 있다가 고개 돌린다.) 골랐어?
희란:제법 효자네. 어디서 구해왔나 싶어도 기뻐하실 거야. (기억을 거슬러보는 듯.) ⋯⋯우리 어머니도 옛날엔 꽃 하나 꺾어 드려도 좋아하셨던 것 같기도 하니까.
고원우:⋯⋯다행이네요. (대충 둘러댔지만 성의 있게 대답해주자 양심이 조금 아파오려고 한다.) 이제 나갈까요?
희란:그래, 그래. (손을 흔들어 주인에게 인사함.)
이제 어디 갈래? 안 배고파? 아니면 기념품 구경하고 싶다던지.
M:식당가 부근의 구역에는 한창 많이 먹기 대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탓에 유독 소란스럽네요.
메뉴는⋯⋯ 메기 튀김인데요? 자신 있다면 도전해보아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식당가 한 편에는 먹음직스러운 국수를 팔고 있습니다. 색색의 고명이 올라와 있고, 육수로 국물을 냈는지 고소한 향이 그대로 후각을 자극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음식들을 팔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다만 자리는 잡아둬야 할 것 같네요.
고원우:⋯⋯. (괜히 금붕어 이후로 이빨 봄.)
희란:먹고 싶은 거 있어? (대회 광경 봄.) 참가할래?
고원우:인간이 이기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질 거라고 생각을 안 하는 듯.)
고원우:먹을 수 있는 거라면 순위권 안에 들 자신이야 있죠. (음식 종류 봄.)
M:음식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고기 구이와 찜부터 생선 탕, 국물 국수와 볶음 국수⋯⋯.
어떤 것이든 원물 그대로의 형체는 없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희란:뭐 먹을 건지 고르면 사올 테니까 자리 잡고 있어, 알았지?
고원우:꼬치 다섯 개, 생선 탕 한 그릇, 국물 국수와 볶음 국수는 고명 많이 얹어 달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괜찮다면 저기 팔고 있는 튀김도 한 접시 먹고 싶은데⋯⋯.
저기 빵에다가 고기 듬뿍 끼운 건 또 뭐예요? (뚫어지게 봄.)
희란:(경이롭다는 눈 됐다.) 한창 때는 많이 먹는구나⋯⋯.
희란:(뜷어지게 보는 쪽의 음식을 확인한다.) 저건 멧돼지 고기를 빵에다 끼우고 재료 넣은 거네. 저것도?
희란:오냐, 자리나 잘 잡고 있어라. 다 사서 찾아갈 테니까. (인파 사이로 사라져서 금세 실의 궤적만 시야에 남는다.)
M:상점가의 자리 공간은 협소한 편입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많이 먹기 대회로 가 있어서 그런지 드문드문 빈 자리가 보입니다.
고원우:(적당히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M:당신이 빈 자리에 앉자, 곧 누군가 당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립니다.
M:고양이 수염을 가진 요괴 하나가 수염을 움찔거리며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그 표정은, 반가움, 희안함, 놀라움, 충격⋯⋯.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 동그란 눈이 점점 더 커지더니 무언가 확인한 듯 아쉬운 낯으로 돌아옵니다.
죄송해요, 분위기가 순간 너무 닮아서, 그만.
고원우: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방금 '진짜 선생님'은 음식을 사러 가셨는데 여기서 기다릴래?
?: 걸치신 옷을 보니 희란 선생님이신가 보네요. 하긴, '인간'을 데리고 다닐 분도 희란 님밖에 없으시고요.
사실 그 옷 때문에 선생님이라 생각했던 거지만⋯⋯.
고원우:이제 놀라지도 않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네가 아는 사람이랑 닮았어?
?: 지금 보면 생김새는 별로 안 닮으셨어요. 그런데 분위기는 정말 닮아서요. 제 은사님하고요.
타타: 아, 그러고보니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제 이름은 타타. 전 영월호 졸업생이에요.
희란 선생님하고는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선후배에 가까워요.
고원우:졸업생 정도는 되어야 인간을 봐도 놀라지 않는다는 건가~. (선후배, 작게 중얼거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은사라는 사람은 어땠어?
그리고⋯ 그 '희란 선생님'도 너처럼 생각할까?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고. (앉아서 다리 흔들흔들⋯.)
타타: 은사님은, 그러니까,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죠. 좀 특이한 구석이 많으셨지만, 그래도 책임지실 걸 전부 책임지시는 분이셨으니까요.
앗, 특이하다는 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종종 곤란해지는 구석을 만드는 분이셨어요.
고원우: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정말 좋은 사람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네가 마음에 들어했다는 건 아주 잘 알겠어. (흐음⋯ 빤히 쳐다본다.) 나도 만나보고 싶네, 어떤 사람인지 아주 궁금해서.
타타: 그래도 전쟁 직후 홀몸으로 요괴들을 가르치려 영월호를 다시 세우시고 책임지신 분은 선생님 뿐이었는 걸요.
물론 희란 님은 당시에 관련해서 의심이 많으셨지만, 결국 최단 기간에 졸업하고 선생에 합류하셨잖아요? 그걸 보면 좋은 분이죠. 감사한 분이기도 하고요. 저도 다시 만나뵙고 싶지만, 역시 어렵겠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셨거든요. 제가 듣기로는 사라지기 전에 희란 님께 드디어 선물도 받으셨다고 했는데⋯⋯.
흠, 아무튼. 아까 말씀하신 질문을 좀 생각해봤는데요. (제 팔짱을 낀다.) 희란 님이라면⋯ 저처럼 느꼈을 수는 있겠다 싶어요. 그렇지만 저처럼 착각하지는 않았겠네요.
그도 그럴 것이⋯⋯ 누구보다 선생님을 잘 아시던 분이시니까요.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솔직히 걱정은 되잖아요. 저도 일단 후배기도 한 데다 소용 없는 일엔 오래 기다려봐야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아⋯⋯! (뭔가 알아챘는지 흠칫이다 고개를 숙인다.)
희란 님한테는 비밀인 거 아시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튀었다.)
M:왜 저러나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저 너머에서 음식을 쌓아두고 균형을 잡아 걸어오는 익숙한 요괴가 보입니다.
희란:(이미 한참 멀어진 너머의 뒷통수 봄.) 저 자식, 또 뭐냐? 좀 익숙한데⋯⋯.
고원우:⋯⋯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아니 요괴에게도 대답 잘해주는 친절한 요괴는 어디에서든 있잖아요? (모르는 척⋯ 고개 돌린다.) 와, 맛있겠다.
희란:아니, 그러니까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보면 될 걸 뭔 놈이랑 뭔 이야기를 했냐는 거지. (막 궁금한 건 아닌데 뭐지 싶은 것에 가깝다.) 오냐. 다 먹어라, 먹어. (익숙하게 차려둠.)
고원우:본인에게 물어보기 힘든 질문들이 몇몇 있잖아요, 이를테면⋯⋯. (당신에게 제법 비중을 차지한 '그 사람'에 대한 질문이라던가. 뒷말은 애써 삼킨다. 와구와구 먹기 시작⋯.) 뭐, 아무튼요⋯⋯. 어, 이거 괜찮네요, 제가 살던 세계에서 먹었던 것과 맛이 비슷해요.
희란:이를테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쳐다보다 짧게 한숨을 쉰다.) 그래, 이런 걸 사춘기 소년이라고 한다던가. 아주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는데. (손 뻗어서 토닥였다.) 아, 소년기엔 잘 먹어야 잘 큰다더라! 먹을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네. 곧 저녁이니까 미리 다 먹어둬.
고원우:⋯⋯내가 모르고 있었던 일을 죄다 캐본다던가. (뭐지⋯ 이 애 취급? 우물우물 씹는다.) 저녁에는 굶기고 일 시키려고요? (아니겠지, 아무래도⋯.)
희란:여기서 모르는 건 산더미인 녀석이 포부는 커서는⋯⋯. 그래서 뭐 알아낸 건 있고? (구석의 꼬치 하나 들어 먹지는 않고 돌린다.) 일은 모르겠고, 요괴가 늘어나니 애를 좀 써야 할 걸. 사람이 많으면 생기는 현상이 있잖냐.
고원우:음, 다들 누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거? (음료까지 꿀꺽.) 설마 미아가 되기라도 하겠어요? 다섯 살 정도 되는 인간, 아니 요괴도 아니고. 옆에 붙어 있을게요. (그릇 깔끔하게 비움.)
잃어버린다고 버릴 사람도 아니면서⋯⋯. (빤히.)
희란:그럴 요괴 별로 없는데? 내가 누구랑 교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말끔히 비워진 그릇들을 잽싸게 모아 정리한다.) 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지. (모른 체.)
더 먹을 게 아니면 이만 갈까?
고원우:네, 가요. (과일 꼬치 하나 들고 일어난다.)
일어나 거리로 나서니 새삼스럽게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길을 걷는 요괴들은 점점 늘어나고 거리에는 아직 조명 하나 제대로 켜지지 않았습니다.
요괴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 유일한 인간은 문제가 다르죠.
충분히 걷기 불편한 환경입니다. 인파에 밀려 묻힐 만큼 말입니다.
여러 곳을 다니던 사이 자연스레 떼어진 손. 요괴와 인간에게 연결된 것은 미아 방지용 끈이 전부겠죠.
당연히도 그 사이 시야에 잡히는 당사자는 사라진 채고요.
고원우:(여기서 잃어버리면 버리고 가는 걸까, 조용히 생각함.)
M: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있을까요?
고원우:민첩기준치: | 60/30/12 |
굴림: | 2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M:당신은 인파 사이에 낑겨 끈을 좇아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아무리 따라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걷고 또 걷는다고 끈의 끝이 보일까요? 아니, 이 끈이 들었던 용도는 맞긴 한 걸까요?
그것도 그럴 것이⋯ 결국 낯선 요괴의 말이잖아요?
고원우:(그럼에도 따라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내가 완전한 신뢰를 쌓지 못한 만큼 그 사람도 동일하다. 고로 따라간다, 어떻게 되더라도⋯⋯.)
M: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조금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 뿐입니다. 끈을 따라간다 해도 목적지에 다다를 보장 하나 없습니다.
쌓인 시간도 신뢰도 얄팍하다는 것을 앎에도 당신은 이유 하나 없기 때문에 따라갈 뿐이죠.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없는 이유만큼이나 의미도 없을 수 없다는 것.
돌아가는 방법도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이곳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고원우:(⋯⋯나는 당신을 만나러 가고 있어⋯.)
그렇다면 이유는 없다 해도 지금 당신에게 목적지만은 존재합니다.
어두운 거리에 무수한 빛이 단숨에 피어오릅니다.
동시에, 당신의 손을 잡아오는 온기가 있습니다.
희란:봐, 내가 경고했잖아? 여기 미아다, 미아. (태연한 말과 별개로 옷차림은 흐트러진 채다.)
고원우:⋯⋯두고 간 줄 알았어요~. (웃으면서 발하는 것과는 달리 이쪽 또한 묘하게 긴장한 기색이다.)
희란:잠깐 확인할 게 보여서 걸음이 빨라졌는데⋯⋯ 아니, 그렇게 먹었으니 잘 따라올 줄 알았지. (흐트러진 머리카락 손으로 대강 정돈한다.) 아니, 너는 무슨⋯⋯
⋯내 이름 한 번을 안 부르니?
고원우:⋯⋯. (그냥, 당신의 짧은 이름을 부를 용기조차도 나지 않았어. 난 이미 이방인이잖아. 어떠한 의미라도 생기면 당신이 원하지 않을 만큼 무거워 질 것 같아서⋯. 이미 당신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삶을 헤매고 있으니까.)
음, 잊어버려서? (멍청하게 보일 만큼⋯ 가볍게, 또 힘 빠진 것처럼 웃는다.) 꼬치가 맛있어서 집중하느라 놓쳤나보다.
다음에는 조심할게요, 누나.
희란:⋯⋯넌 정말 이상한 애야, 아니? (요괴라고 타인의 생각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단순히 넘겨짚을 각오는 없어서⋯⋯.)
그러니까 안 믿어! (순간 뻗었던 팔로 손을 맞잡는다.)
역시 끈으로는 불안하고, 넌 정신이 팔려서 그런 것 하나 잊을 만큼 허술하게 구니까, 그러니까⋯⋯. (이유를 덧붙여서라도 현재를 붙잡을 필요가 있는 거지.)
고원우:그래봤자 이런 세계에서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죠. (조금 놀란 듯한 얼굴.) 역시 신뢰를 받는 건 어느 세계에서든 어려운 일이네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이후에는 쓸모없는 잡담이 쏟아졌다. 혼자 있어서 무서웠다느니, 그렇게 잘 가던 시간이 뚝 멈췄다느니⋯.)
희란:과연 그럴까는 두고봐야 알겠네. (그 사이 어디에선가 집어온 등불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길을 이끈다. 쓸모의 여부를 가릴 필요 없이 답은 이어진다.) 그래서, 뭘 확인하려고 했냐면⋯⋯ 이번에도 불꽃놀이를 하나 하고.
이번에도 하더라? 명당은 알고 있으니까 올라가서 보자. (그렇게 이끄는 방향은 더욱 밝은 곳이다.)
고원우:믿어도 되는 거죠? (느릿느릿 따라간다.) 불꽃놀이 같은 걸 본 지는 좀 됐는데⋯⋯.
그러나 밝은 길과 길 사이를 건널 구간에 폭죽 소리가 들려옵니다.
희란:앗, 절반만 믿어라. (폭죽 소리 듣고 태세전환.) 그래도 나쁘지 않게 보일 테니까⋯⋯.
길을 가던 모든 요괴들이 걸음을 멈추는 것이 보입니다.
누구 하나 거를 것 없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불꽃은 지네 모양이 되기도 하고, 개구리 모양으로 피어나기도 합니다.
불꽃 하나가 사라질 무렵이면 또 다른 불꽃이 올라갑니다.
대부분의 이들은 불꽃의 사이로, 거리를 수놓는 등불의 색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하늘에 피어오른 불꽃과 다를 바 없이, 눈이 멀어버릴 만큼 붉은 빛이 말이에요.
동시에 수많은 이들 사이, 인간 하나만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 있죠.
고원우:화려하네요, 요즘 말로 하자면 스케일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뚫어지게 쳐다봄.)
이 비현실적인 광경마저 '이계'를 증명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희란:왜, 인간들이 사는 곳은 이것만큼 화려하진 않나? (불꽃을 올려다보는 채다.)
고원우:똑같이 화려하긴 한데, 묘하게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멋지지 않다는 말은 아니에요. (휴대폰⋯ 작동이 될까? 만지작⋯.)
M:작동 가능합니다. 배터리가 많지는 않지만요.
희란:⋯⋯어떠려나. 다르게 멋지다니 궁금하긴 하네.
고원우:(와! 사진을 찍는다. 괜찮다면 제일 가까이에 있는 옆에 있는 요괴도⋯.)
나중에도 만날 수는 없으려나⋯⋯.
글쎄⋯⋯. (작게 미소짓는다.) 이런 곳에 다시 돌아오고 싶진 않을 거 아니야.
고원우:여기든, 제가 있던 곳이든⋯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무언가가 사는 곳이 다 비슷비슷하고⋯⋯. (어쩐지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돌아오고 싶지 않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돌아올 방법을 모를 뿐이지.
음, 그러니까⋯. 다시 만날 수 있으면⋯⋯. ('그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속으로만 생각했다.)
희란: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돌아오고 싶은 이유라도 있어? (시선은 인물을 향하지 않는다. 갈 곳 없이, 본래라면 빛 하나 없을 하늘을 수놓는 잔상에 고정된 채.)
그래, 나도 어쩌면⋯⋯.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기도, 세계가 신음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
이 소리는 대지의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집니다.
이 소리는 모두에게 들리는지, 모든 요괴들이 웅성임을 얹어갑니다.
결국, 당신 옆의 요괴마저 인상을 쓸 무렵⋯⋯.
금은 벌어지며 틈을 만들고, 흙이나 모래가 떨어지던 틈은 큼직하게 아가리를 벌립니다.
여기는 더이상 축제라고 부를 공간이 아닙니다. 불꽃놀이는 중지되었습니다.
가판대가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부모로 보이는 요괴들이 어린 요괴를 안아들고 달립니다.
부서진 평화가 언제 존재했냐는 마냥 흩어지고, 그 자리에 절망은 잠식합니다.
당신이 밟은 땅 역시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굵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상한 일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디에선가부터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원우야, 눈을 감아! 절대로 봐서는 안 돼, 절대로.
모든 것을 찢을 듯 날카로운,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희란:어떤 것의
근원도 찾으려 하지 마. 인식 당하는 순간 끝이야!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아가, 누가 우리 아가를 못 보셨나요?!"
"이봐, 비켜! 저리 가!"
고원우:그, 그렇게 설명해봤자⋯! (못 알아 듣는다고요!)
희란:내 말을 믿어, 지금은 날 신뢰해. 아무것도 모르겠더라도! (이를 악물었다가 소리쳤다.)
"아아, 신이시여!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아아⋯⋯ 살려줘⋯⋯!"
'탄탈로스의 사냥개'가 이계에 나타납니다.
지진과 함께 알 수 없는 괴물이 날뛰기 시작합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절규가 메아리칩니다.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광경 속에서, 당신은⋯⋯
희란:⋯⋯당장은. 네가 날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그리고⋯ 이 자리의 모든 것을 뒤로 한 채로 갈 수 있다면.
고원우:그 말은 오히려 제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저랑 갈 수 있을 리가 없는데⋯⋯.
희란:그건 네가 뭘 몰라서 그래⋯⋯. 이건, 이건 말이지. (무언가 뱉으려는 듯 하다가도 다시 삼켰다. 그리고 잡은 손을 그대로 움켜쥔 채 거리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달렸다.)
(다만⋯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 있을 정도다.)
고원우:⋯⋯. (따라가면서도 내뱉을 만한 질문들은 결코 새어 나오는 법이 없다. 이 길이 맞을 거야, 그래야만 해⋯.)
M:생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소리가 뒤로 들려옵니다. 그럼에도 구할 수 없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소리를 뒤로한 채로, 함께 자리를 벗어납니다.
M:고원우,
SAN 판정 해주세요.
(1/1d3+1) 고원우:SAN Roll기준치: | 48/24/9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그럼에도 당신은 어떤 질문도 뱉지 않습니다. 충동에 밀려 하나 새어나오는 것 역시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어째서일까요.
그 이유마저 당신에게는 존재하지 않기라도 한 마냥, 달리는 걸음만이 소리의 흔적으로 남습니다.
원래 왔던 곳 너머를 되돌아가듯, 걸음은 이어집니다.
뒤에서 그 어떤 소리가 들리든,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당신 앞의 요괴는 묵묵히, 어떤 말도 두지 않은 채 앞섭니다.
손을 놓지 않고, 오르기 쉽도록 끌어당기면서요.
M:그제서야 세상을 뒤흔들던 지진은 멈췄습니다.
산 아래 풍경은 처참합니다. 지대가 낮은 곳은 대부분 무너지고 함몰되어 새까만 구멍이 보입니다.
영월호 역시 마찬가지로⋯ 한눈에 보이기에도 요괴들의 학당은 완전히 내려앉았습니다.
폐허 더미가 거대해 신목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은 신목을 통해서만 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래서는 돌아갈 수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희란:⋯⋯. (그제서야 손을 놓는다. 자리에 주저앉아 산 아래를 바라본다.)
고원우:우린 이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네. (옆에 앉는다.)
희란:아니⋯ 너는 아니지.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줄게⋯⋯. (산 아래를 눈 안에 담으면서도 어조만은 담담했다.)
같이 가자고 해도 되나.
희란:하하, (고개를 숙였다.) 내가 어딜 간다고⋯⋯.
희란:있잖아, 꼬맹아. (언제 이름을 불렀냐는 듯, 돌려 부르는 호칭으로 돌아온 채였다.) 잠시 지진이 멈추기는 했지만 그 짐승은 계속 돌아다닐 거야. 여기는 정말 위험하니 돌려보내 줄게.
고원우:그 나무는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방법을 쓰겠다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무엇보다도 두고 가면 마음에 걸릴 것 같기도 하고.
더 지킬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아닌가?
희란:⋯⋯. (어떤 말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래도, 널 돌려 보내줄 수는 있지. 내 능력을 쓰면 말이야.
나는 신목의 문을 여닫을 수 있는 드문 요괴니까⋯⋯.
고원우:이대로 제가 떠나면 '누나'가 하게 될 일이 뻔해서요, 남아있는 요괴들 찾아 다니다가 다치고. 어쩌면 죽기도 할 거고⋯⋯. 난 그런 건 싫은데.
누구 하나라도 살아 남아야 희생에 의미가 있는 거지만 이 세계에 희망이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이건, 그러니까⋯ 멸망 같은 거잖아요.
희생도, 희망도, 의미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드문 요괴'의 힘으로 같이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때요?
희란:이럴 때는 할 말 다 하는구나?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썩 좋은 답이 생각나지는 않네.
하지만,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망설이다 정적만 남는다.) ⋯그럼에도 내가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은 있지. 나는 선생님이잖아. 학생들을 완전히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야.
무엇도 의미는 없지만 그 무엇에 이유는 있어⋯⋯. 그 '드문 요괴'가 말이야.
고원우:⋯⋯. (손을 붙잡는다, 어떠한 허락도 용서도 구하지 않고서⋯.)
적어도 이곳에 살아있는 인간인 나한테는 의미가 있어!
당신이 내게 모든 것을 뒤로 한 채로 갈 수 있냐고 물었던 것처럼, 나도 당신에게 그렇게 묻고 있는 거야.
그렇게 해서 나와 함께 가자고. 어떻게든 살자고⋯⋯.
혼자 가고 싶지 않아.
혼자 살아남는 건 외로운 일이잖아⋯.
희란:(손과 손을 겹치면 가장 먼저 맞닿는 것은 온기다. 어떤 준비도 없이 마주한 것은⋯.)
나, 제법 오래 살았어. 변변치 못한 삶이긴 했겠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뒤로 하라고 하니 뒤로 한 채로 말이지.
그건 정말 외로운 일이야. 그렇게 살아가는 건⋯⋯.
그런 식으로 사는 건 정말 외로운 일인데, 참 이상하지⋯. 정말 모르겠네. (늘어놓는 모든 것은 온전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
⋯⋯혼자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거야?
고원우:그렇게 살아가는 게 외롭다는 걸 안다면⋯. ('내가 그 사람과 조금이라도 닮은 점이 있다면.') 빈말이라도 함께 가겠다고 해줄 수 있을 텐데, 확신을 주진 않네. 당신은⋯⋯.
그래, 혼자서는 갈 생각이 없어. 나름 인질극인 셈이지, 얼마나 잘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
희란:그러게, 왜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어린 애의 말에 변명 하나 못 낼 만큼 적게 보내온 세월이 아닌데.
그러면 어쩔 수 없겠네⋯⋯.
(이름으로 타박헀던 적이 있지만,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이름을 낸다는 것은 음절 하나에 의미를 담는다는 것. 의미를 담는다는 것은 무게를 얹는다는 것. 무게를 얹는다는 것은⋯⋯.)
(그 삶을 매다는 것.) 원우야, 어디 안 따라올래?
고원우: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하지 그랬어? 그럼 어떻게든 속아 넘어가려고 애썼을 텐데⋯⋯. (그리고 그 삶을 매달면 자연스럽게 무거운 쪽으로 운명이 기울어지고 만다. 균형을 맞추고 운명에 대항하여 올려놓을 수 있는 건⋯.)
(내 목숨뿐.) 그럴까, 희란 누나.
희란:어떤 가능성은 배제하는 게 나을 때가 있어서. 그런 거로 애쓰게 하기도 곤란하잖니.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주변을 둘러본다.)
⋯자, 그러면 짐이라도 잘 챙겨둬! 뭐든 여기에서는 얻기 힘든 게 될 테니까.
고원우:(짐 챙기라는 말에 생존 대비 키트 챙기는 것 마냥 이것저것 가방에 쓸어 담는다⋯⋯.)
희란:챙기는 분량만 보면 어디 조난이라도 당하러 가는 것 같구나. (조난은 이미 당했겠지만.)
고원우:뭐가 필요할지 모르니까 어쩔 수 없죠⋯⋯. (뭔가 아는 것 같은데 제대로 이야기는 안 한단 말이지, 중얼중얼⋯.)
다 챙겼어요.
그러면 갈까? (손 한쪽 내밀어본다. 잡기라도 하란 것인지⋯.)
고원우:⋯⋯내가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으면 어쩌려고 했어요? (손 잡는다.)
희란:그러게, 그러면 어쩌려고 했을까.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상한 확신이지⋯⋯. (맞잡듯 쥐고 걸음을 옮겼다.)
M:요괴가 이끄는 방향은 호수를 넘은 숲속의 길입니다. 이전보다 조금 더 깊고, 여전히 낯선⋯⋯.
고원우, 지능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지능기준치: | 40/20/8 |
굴림: | 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M:길의 도중 당신이 깨닫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영월호부터 요괴의 집까지, 그리고 축제가 열리는 시내에서부터 또 다시 요괴의 집까지⋯⋯. 두 갈래의 산길을 지나왔죠.
지금 걷는 길은 여태까지 걷지 않은 길입니다.
정확히는 누구 하나 지나지 않을 길에 가깝겠네요. 앞의 요괴가 반쯤 길을 만들며 가고 있으니까요.
길을 만들며 두 사람은 산속,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걸어갑니다. 하늘은 새벽녘을 가리키고, 주변을 밝히는 것은 여전히 반딧불이 뿐입니다.
희란:그러고보니 말을 안 해준 것 같네. 요괴들이 왜 반딧불이가 인연으로 이끌어준다고 생각하는지 알아?
고원우:잘 모르겠는데⋯⋯. (주위를 둘러본다.) 어두운 곳을 밝⋯ 혀서? (상상력 없음.)
희란:어떤 요괴들의 혼은 다음 생을 택할 때까지 반딧불로 잘게 조각난다고 하거든.
그러니까⋯ 나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는 그 광경을 직접 보았다고 하기도 하더라. 믿을 일인지는 모르겠고.
하지만 믿을 일이 아니어도 믿는 거야. 어떤 이의 혼이 제 명을 찾아가는 길에 연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한 손으로 잔가지를 정리하며 계속 걷는다.)
⋯⋯보이는 게 이것밖에 없길래, 심심할 것 같아서.
고원우:누군가의 영혼이라서, 이렇게 가볍게 날아 다니고⋯ 반짝반짝하게 빛날 수도 있겠네요. ("길이 복잡해서 심심한 적은 없거든요?" 가볍게 농담처럼 덧붙였다.)
희란:그렇다고 할 수 있지. 왜, 너도 믿겨져? (어깨만 가볍게 으쓱였다.)
M:만드는 길의 너머에서 걸음이 멈춥니다. 도착한 곳은⋯⋯.
이상한 일이죠. '거대한 나무'가 시선을 끕니다. 금색 새끼줄로 격리된,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로 가지를 높이 뻗은⋯⋯.
그러나 이 곳은 고등학교 뒷산도, 영월호 앞도 아닙니다.
희란:(앞에 우뚝 선다.) 내가 이계의 신목이 한 그루라고 했었지⋯.
사실 말이야, 신목은 두 그루야. 이거 비밀이다? 이건 웬만한 요괴도 모르는 거거든.
고원우:⋯⋯이런 게 두 그루 있어도 되는 거예요?!
희란:몰라! 그런데 인계도 다를 건 없을 걸? 모든 건 수가 균일하길 마련이니까. 어디에도 모자람이 없도록.
(한 걸음씩 옮겨 남은 손으로 나무의 몸통을 짚었다.) 그래도 여긴 멀쩡하네⋯⋯.
고원우:(뒤를 졸졸 따라간다, 선뜻 나무를 건드리진 않지만⋯.)
희란:너는 내가 뭔 괴이한 취향이라도 있어서 내 집이 이런 구석에 있는 줄 알았겠지만 버려둘 수 없는 게 있어서라고. (중얼중얼⋯.)
희란:두 그루를 동시에 관리할 수는 없으니까, 하나는 비밀에 부치는 거야. 그리고 보통은 안 갈 곳으로 만들고.
아무튼⋯. (작게 한숨을 내뱉는다.) 넌 모르겠지만 그 사이 몇 번이고 지진이 더 발생했어. 사냥개가 날뛴 거지⋯. 너도 여기 와서 들어봤을 텐데.
아, 물론 깊게 추리하지 마. 그것 자체가 위험하니까.
고원우:깊이 고민해보라고 말한 거 아니었어요? (물론 머리가 나쁘니 추리를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요?
희란:있잖아, 나는 이런 일이 꼭 처음은 아니야. 어릴 때 이곳은 정말 혼란한 곳이었으니까⋯.
⋯⋯내가 동생은 없어도 오빠는 있었다고 했지? (손끝으로 나무를 툭 두드린다.)
고원우:네, 그랬죠. (얼굴도 모를 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슬퍼하지 않았다. 얌전히 대답을 기다리기나 한다.)
희란:오빠는 그때 잃었어.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정확히는 내가 보내진 것에 가깝지⋯. 오빠가 너만은 가야 한다고 했거든.
꽤 오래 전 일이지만 그런 건 잘 안 잊혀지더라. 희란아, 너는 가야 해. 너라도 가야 해. 나는 여기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그러니, 너라도⋯⋯.
그러니까 어서 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소리를 들은 날부터 나는 항상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이렇게 외롭게라도 살아주길 바란다니,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건 모르겠고 이해할 생각도 안 들었지. 물론 내가 그렇다고 죽을 이유도 없으니 살긴 잘 살았지만.
그런데⋯ 이제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나쁘네.
이건 다른 소리인데⋯ 네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 있잖아. (나무에서 손을 떼고 목덜미를 가리킨다.) 그것도 언제든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어. 그건 내 목숨을 쪼갠 거나 다름 없으니까. 그냥 안 찾은 거야. 요괴의 힘은 생을 이루는 조각이니까⋯ 뭐, 그런 거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춘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줄 게 있어.
고원우:⋯⋯이런 상황에서 뭘 주려고요? (조금 의심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손 내민다.)
희란:(내민 손을 가만 바라보다 주먹을 꾹 쥐어 얹고, 잡은 손을 순간적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니까 이거로 셈이 맞을 거야.
(무게를 재어 저울에 다는 것은 높고 낮음을 맞추고자 하는 일이다. 누군가 목숨을 달았다면 마찬가지로 달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이것도 그럴 거거든⋯⋯. 그러니까,
M:주먹을 폈을 때 쥐여진 것은
하나의 방울.
문장이 끝까지 맺어지자 요괴는 힘을 주어 당신을 밀칩니다. 잡았던 손을 놓은 채로.
눈앞에서 이 세계의 멸망이 다시 시작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희란:미안해. 그래도 나름 잘 지내야 해, 알았지? 그럼 안녕.
무엇을 해도 닿지는 않을 겁니다. 허공을 가르고, 경계를 알게 될 겁니다.
어쩌면 흐리게 웃고 있는 것도 같은 낯으로⋯⋯.
어젯밤 들었던 짐승의 울음소리가 바로 앞에서 울려퍼지고 있는데도요.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두 사람을 둘러싼 세계는 억지로 눌린 듯한 풍경의 연속입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요괴의⋯⋯.
고원우:듣기기준치: | 60/30/12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M:들려오는 말은 어떤 이야기의 끝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 거구나.
그래, 역시 알았어.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가줬으면 하는 게 무엇인지⋯⋯.
그 문장까지를 당신은 들을 수 있습니다. 알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어 들어오는 감각은 처음 이곳에 왔던 때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이전에는 당신이 무언가의 내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억지로 틈을 내 벌린 살 안으로 집어 넣어진 기분입니다.
이물질을 주입당한 신목이 지르는 비명이 귓가에 들려옵니다.
M:고원우,
SAN 판정 진행해주세요.
(1/1d3) 고원우:SAN Roll기준치: | 47/23/9 |
굴림: | 53 |
판정결과: | 실패 |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색상의 보이지 않는 촉수, 혹은 다리 같은 것이 감싼다고 느껴집니다.
타의에 의해 강제로 비틀린 공간과 시간이 제 아가리를 벌립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자, 지금의 이야기이고, 언젠가의 이야기가 될 것.
당신은 '본다'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됩니다.
언뜻 보인 아이의 얼굴은, 분명 당신이 아는 사람입니다.
이계에 대한 모든 것은 당신이 어린 시절 책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그 요괴가 기다렸다던 사람의 정체 역시도 짐작하지 못할 것은 없을 겁니다.
─────── 두 번째 이야기 ───────신목 앞을 지키고 선 요괴가 있습니다. "선생님, 이만 돌아가요." 작은 요괴들이 말하면, 요괴는 주먹을 꾹 쥐고 고개를 저을 뿐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곤란하잖아······. "아, 이 요괴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당신이 아는 그 요괴입니다.요괴는 수업에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눈이 내리는 날에도 굴하지 않고 신목 앞을 지킵니다. 때로는 낮잠을 자고, 때로는 신목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달랩니다. 무수한 이들이 만류한 일이지만, 보이는 장면에서 이것은 단지 일상에 가깝습니다. 정처없이 매 하루를 살아내고야 마는······.그렇게 100년, 100년, 그리고 또 100년이 흐릅니다. 축제가 시작해,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인간이 있다면 돌려보내는 건 늘 요괴의 몫이었지만, 기다리던 것은 나타나지 않습니다."분명 그 인간은 공간의 주인님께 저주받은 거야. 기다려봤자 다시는 올 수 없는 몸이 된 게 분명하다고!""맞아, 인간은 나약하니까 벌써 죽어버렸을걸."다른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요괴라고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신목을 지킬 이유를 찾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채로 요괴는 언제나 신목을 지켜왔습니다. 어쩌면 이제 습관일 뿐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나왔던 몇몇 요괴들이 말한 것처럼 이계는 거대한 유리 돔 안에 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처분'은 이계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 가볍게 부숴왔던 무수한 돔들을 부수듯이요.
M:고원우,
SAN 판정 진행해주세요.
(1/1d3) 고원우:SAN Roll기준치: | 44/22/8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수많은 필름이 재빠르게 흐르며 사고에 주입됩니다.
강제로 흘러들어온 이야기들을 곱씹어볼 틈도 없이, 의식이 차츰 아득해집니다.
숲과 나무로 가득 차 있지만 이계의 산과는 확연하게 틀린 이곳은⋯⋯.
귀신이 나온다는 학교 뒷산, 신목이라 불릴 만큼 커다란 나무 앞입니다. 실제로 또 하나의 신목일 테고요.
고원우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달라진 건 없지 않겠습니까.
있어야 할 곳이고, 처음에는 돌아가려고 했던 곳인데.
이계로 조난당했을 때는 낮이었는데, 지금 주변은 매우 늦은 시간입니다.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것은 아니라고 해도요.
나무 너머로 드문드문 보이는 건물의 불빛, 창백한 달.
간간히 자동차의 경적이 들려오는⋯⋯.
돌아온 당신에겐 모든 것이 들려 있습니다.
가방에 넣었던 것, 축제에서 얻은 것들, 그리고 또 하나의 방울까지도 말입니다.
여기는 분명한 인계고, 당신은 모든 것이 멸망하는 세계에서 귀환한 겁니다.
어떤 하나를 남겨뒀다 해도 말이죠.
고원우, 지능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지능기준치: | 40/20/8 |
굴림: | 82 |
판정결과: | 실패 |
당신을 보내고 요괴는 무사히 도망치긴 했을까요?
M:요청하고 싶은 판정이 있다면 자유롭게 요청 가능합니다.
M:방울은 당신의 목에 걸려있는 방울과 흡사합니다. 거의 같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방울은 어둠 속에서도 미약히 빛을 냅니다. 이것이 어떤 힘의 결정체라는 것을 표하듯이요.
이것은 힘의 결정체라 했었죠. 그리고 신목의 문을 여는 것 역시 보통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요괴는 무엇을 감수한 걸까요?
외롭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거냐고요.
난 이대로 평생 당신 생각만 하면서 살아야 할 텐데⋯⋯.
잊어버린 건 내가 나빴지만, 지금 좀 더 나쁘게 구는 건 당신이라고요.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라도 줬으면 좋았을 텐데.
M:고원우,
지능 판정 다시 시도 가능합니다.
지능기준치: | 40/20/8 |
굴림: | 3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당신은 문득 하나의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세계와 이계의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는 것을요.
그리고 아마도⋯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은 이계일 겁니다.
어떻게 이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해도 그때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물론 지금의 당신이 방법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요.
그렇다면⋯⋯.
자, 여기에서 고원우에게 질문합니다.
돌아온 곳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요? 그것도 아니면 이곳에 남기라도 할까요.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 건가요?
고원우:(그곳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넘겨보며 좀 더 기다려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본인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M:사진을 넘겨보면 우습게도 두고 온 것까지 화면에 잔상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야 대부분의 것이 당신과 함께 넘어왔으니까요. 축제에서 얻은 인형도, 장신구도, 심지어 작은 금붕어까지도요.
어둠 속에 가장 선명한 빛은 화면의 빛입니다.
⋯⋯.
화면의 빛인가요?
어둠 속을 가르는 다른 빛 하나가 존재합니다.
깜빡, 깜빡.
반딧불이 한 마리가 당신의 앞을 가로지릅니다.
이런 학교의 뒷산에는 있을 리가 없는데도요.
순간은 화면보다도 선명한 것처럼 보이는 빛은 조금씩 옅어집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꺼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디로인가 향하면서요.
멀지 않은 시간에 들은 적이 있었죠. 반딧불이는⋯⋯.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고원우:(이 길 끝에는 당신이 없을 거야, 난 무엇 하나 선택해도 제대로 되는 꼴을 못 봤으니까. 하지만⋯.)
⋯⋯조금은, 보고 싶어해도 이상한 게 아니잖아. (반딧불이를 따라간다.)
M:반딧불이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 더 알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생명의 날개 한 쪽이 반쯤 찢어져 있다는 것을요.
어떻게 따져도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몸입니다.
그럼에도 추락할 듯 내려앉다가도 금세 날아올라 앞으로 향합니다.
향하는 곳은 산의 아래.
산을 내려오다 보면 잔가지에 당신의 볼이 긁히고, 나무뿌리는 몇 번이고 걸려 넘어질 위기를 만듭니다.
고원우, 민첩 판정 진행해주세요.
고원우:민첩기준치: | 60/30/12 |
굴림: | 2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M:그럼에도 넘어지지는 않고, 어찌저찌 산을 내려갑니다. 이계에서는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잡아주는 사람도, 길을 앞장서 만드는 사람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뒷산을 완전히 내려오면, 반딧불이는 제자리를 빙글빙글 돕니다.
그리고는⋯ 펜스를 넘어 교내로 향합니다.
생각나는 게 존재하나요?
지능 판정 역시 가능합니다.
고원우:지능기준치: | 40/20/8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지능기준치: | 40/20/8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멍청.)
M:반딧불이가 어디론가 향한다면 자신이 돌아온 곳이겠죠.
그리고 이계의 신목은 두 그루였습니다.
요괴는 인계 역시도 다를 것이 없을 거라 말했었잖아요.
그렇다면 나머지 한 그루는 어디에 있을까요?
축제가 끝나면 자연히 열린다는 신목의 문은요?
지금쯤이면 열렸을까요?
학교 뒷산에는 신목 하나가 있습니다.
인계와 이계를 잇는 것은 신목과 신목. 각 세계의 신목은 두 그루.
당신은 대체 어디로부터 이계로 향했었나요?
M:그렇다면 꽤나 익숙하게 펜스를 넘어갑니다. 그리고 복도를 건너 교실로 향합니다.
반딧불이는 희미해진 빛이지만 당신의 바로 앞에서 날아가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그럼에도 누군가를 인도하는 것처럼⋯⋯.
교실 문과 창문은 당연하게도 잠겨 있습니다. 조악한 자물쇠니 못 열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열쇠공 혹은 근력 판정 가능합니다. 제한 없이 시도 가능하나 시도 횟수에 따라 부상 정도가 결정됩니다.
근력기준치: | 70/35/14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M: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고원우는 자물쇠를 부숴먹습니다.
교실에 훔쳐갈 게 없다 해도 그렇지, 학교 비품도 참 조악하죠⋯⋯.
고원우:(죄송스러운 마음 하나 없는 채로 들어간다.)
당신의 사물함 안에 익숙한 검은 소용돌이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반딧불이는 교실 안으로 들어서 그대로 추락합니다.
저 검은 소용돌이는 반짝이는 인도자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M:이 문이 다시 이계로 갈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이계는 당연히도 멸망할 것이고, 그 멸망이 다른 것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 신목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이것은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다만 이번엔 돌아올 수 있을 지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당신이 자연히 알고 있을 명제입니다.
소용돌이를 앞에 둔 당신에게 묻습니다.
들어갈 건가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돌아가자 할 수도 없을 텐데요.
이계는 멸망의 길을 밟고 있습니다. 멸망이란 혼돈이 모인 세계.
그 세계에서 당신이라도 내보내진 거예요. 누군가 돔을 깰 일도, 단순히 멸망을 가정할 일도 없는 세계로 돌려놓고자 말이에요.
불확실한 가능성입니다. 어떤 확신도 얻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 지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고원우:당신이 나를 밀어 넣었을 때, 왜 짜증과 동시에 슬픔을 느꼈던 걸까? 왜 외롭게 살아가는 것과 함께 있는 것 중 전자를 선택하게 만들었던 걸까. 난 가족을 잃고서 어떻게든 살아갔던 당신과는 다른데, 그때를 추억하며 긴 세월을 보내다가 죽어버릴 텐데⋯⋯.
당신이 가지 말라고 했다면 난 그렇게 했을 거야, 알고 있었겠지만. (한 발자국 옮긴다.) ⋯⋯있잖아.
왜 기다리겠다고 했어?
그때, 무슨 생각을 했어?
난 역시 '직접' 대답을 듣고 싶어. (돌아가자, 방울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M:그렇다면 당신이 할 것은 사물함 너머로 당신을 밀어넣는 일입니다.
이제는 나름 익숙할 어지러움이 한 인간을 집어삼킵니다.
거대한 짐승이 짓밟고 지나간 것처럼, 주위에는 제대로 남은 것이 없습니다.
거대한 몸집으로 그 자리를 지키던 신목조차도 몸이 반쯤 꺾여 있습니다.
폐허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난 파편들로 이루어진 공간.
곤란한 게 보이는 것 같은데⋯.
M:어디에선가 희미한, 당신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M:목소리가 들리는 곳에는, 폐허 속 신목에 몸을 비스듬하게 기대 앉은 요괴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요괴의 모습은⋯
짐승에게라도 뜯긴 것처럼, 왼쪽 팔이 없습니다.
고원우, SAN 판정 진행해주세요. (0/1d3)
고원우:SAN Roll기준치: | 43/21/8 |
굴림: | 10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M:끝도 없이 흐르는 붉은 피가 주변에 고여 있습니다. 기대앉은 것도 기울어졌다 하는 게 맞을 것처럼.
그 광경은 피로 그려진 원 위에 있는 것 같네요.
지금 이 광경 속에 존재하는 생명체라고는 단 둘 뿐입니다.
멸망이란 이런 걸까요.
고원우:⋯⋯이거,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예요? 또 다른 요괴들 구하느라? (상처를 살핀다.)
M:어떤 세계의 치료로도 제대로 살아나기 힘든 상처겠죠. 그도 그럴 것이⋯.
희란:구하다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냥개의 표적이 된다는 건 그런 거니까.
아이 참⋯ 제대로 잘 도망쳤나를 걱정했더니, 어떻게 이렇게 또 돌아와? (흐린 시야를 고정했다.)
고원우:이걸로 치료 같은 건⋯⋯. (방울을 내보이다가 할 말을 잃었다. 애써 시선을 마주한다.)
희란:하하, 꽤 똑똑하네? 뭐, 그러면 살아날 수는 있겠지. 잠시겠지만.
사냥개에게 쫓긴다는 건 그런 거야, 원우야. 어떤 세계든 쫓아와서 모든 것을 부수는 존재⋯⋯.
상호의 '인지'를 기준으로 하지. 그러니까 안 받을래.
⋯⋯왜 왔어? 온 이유가 있을 테니, 해결부터 해야지.
고원우:기다리겠다고 해서 왔어요, 좀 시시한 이유지만.
잠시라도, 적어도 지금 당장을 버티는 게 중요할 거 아니에요⋯. 받아요. (억지로 쥐여준다.)
희란:음, 나는 이걸 다른 방향으로 쓰고 싶은데. 이거면 한 번 정도는 더 돌려보낼 수 있거든.
(쥐여진 방울을 떨어트린 뒤 손을 다시 내민다.) 목걸이 좀 줄래? 네가 원래 가지고 있던 거.
고원우:돌려 보내려고 달라고 하는 거면 줄 생각 없는데⋯⋯. (눈 가늘게 뜨고 봄.)
희란:⋯⋯그럼 돌아오지라도 말던가. 내가 기다리는 걸 잘 하는 건 모르지도 않을 거면서. (이전 이계에서의 모든 행적을 짐작하듯, 가벼운 투였다.)
고원우:그걸 알고 나니까 더 기다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방울을 잡는 대신 손을 꽉 쥔다.)
여기서 죽을 생각이에요?
희란:(작은 한숨.) 말 안 하려 했는데⋯⋯.
뭐, 그렇겠지.
하지만 그 방울은 이런 찰나에 소모하기엔 너무 큰 무게야. 나 정도의 요괴가 시간을 건너 만든 방울은 인연의 결정체니까. 너, 신목의 문을 아무나 보는 줄 아니? 반딧불이는 어떻고. 이계의 말은 그냥 통하겠냐고.
⋯⋯네가 나를 만난 것도, 우연은 아니야. 이 모든 것이, 심지어 네 세계에 속하지 않은 모든 기억들까지⋯ 그 방울로부터 보존되는 거라고. (내밀었던 제 손으로 시선을 옮긴다.) ⋯네가 방울을 돌려준다면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아.
그러니까, 나는⋯ 언젠가 다른 생명으로 되살아나겠지. 그건 요괴의 법칙이고, 나 같은 요괴는 더 엄정하게 적용되니까. 나는, 그냥⋯ 그래서, 그럴 때라도 좋으니 당신을 다시 만나보고 싶었어. (얕은 숨을 낸다. 한숨일지도 모르고⋯.)
고원우:⋯⋯그 순간을 위해서 지금 당신을 이렇게 두라는 건 너무 잔인한 처사 아니에요? 구할 수 있었다는 생각만 평생 맴돌 텐데.
언젠가 다시 되살아난다고 하더라도 그건 당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래요.
찰나를 살아가는 인간이라, '다음'보다는 눈 앞의 '지금'이 훨씬 더 중요하단 말이에요⋯⋯.
희란:그래, 그렇겠지. 그렇지만 난 성격 나쁜 요괴잖아. 모르지 않으면서.
내 숨을 잠깐 붙여두고 날 잊는 건 괜찮아? 나 어차피 남은 힘도 별로 없어서 다음이라고 못 피해. (뻔뻔하다···.)
고원우:⋯⋯. (묘한 얼굴⋯ 한숨 푹 쉬고 옆에 앉는다.)
이상한 요괴.
나쁜 요괴⋯.
제멋대로 구는 요괴⋯⋯.
희란:본인 소개나 다름 없네 정말······.
좀 봐줘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이런 말 밖에 못한다는 거 알잖아요.
희란:(묘하게 의기양양한, 이긴 듯한 낯으로 웃는다.) 들어주려고?
고원우:전 그 방울을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고, 유일하게 아는 분이 협박까지 하는 탓에 무력하네요. (빤히 봄.)
희란:사용하는 방법을 알았으면 안 들어줬을 거야? (시선 안 피함.)
내가 애써 정말 다 쥐여 돌려보냈는데 이렇게 돌아와 놓고서······.
고원우:당신이 기다리겠다고 해서, 그리고 제가 보고 싶어서 온 거예요. 그런데 나보다는 당신의 각오가 훨씬 더 무거우니까.
(내가 아무리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목숨이라는 건 가벼우니까. 그래서⋯.)
⋯⋯됐어요, 저 다시 돌려 보낼 거라고 했죠? 그럼 그전까지 같이 있어요.
희란:이런 걸 보면 기도 약하고, 이래서 혼자 어떻게 살려나 몰라.
성질 나쁜 소리 하나 더 해도 돼?
희란:날 기다려줄래? 내가 기다렸던 것처럼 살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냥 일상 한 구석에 박아두는 정도로.
고원우:대답 안 할래요. ('⋯부탁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거라고!' 라는 소리를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나름의 심술이다.)
희란:성격도 참 나쁘지······. 기대 하나 하게 해주면 어디 덧나나.
그럼 방울 하나 줘. 하나는 당신이 가지고. 이왕이면 어디서 주웠을 거 말고 당신이 받았던 걸 가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름 큰 결심으로 달았던 거라. (그러나 뭐든 상관은 없다.)
고원우:(영 불편한 기색이지만 부탁은 들어준다. 묵묵하게 움직이는 손⋯.)
희란:(죽을 때가 되니 더 뻔뻔해지는 것인지··· 방울을 쥐고 얄궂게 웃는다.) 손도 잡아주면 더 좋고.
자, 더 할 말이나 들을 말 있어?
고원우:나한테 미안하진 않아요? 이렇게 될 줄 몰랐다던가, 거짓말이라도⋯⋯. (투덜거리다 입 다물었다.) 대답은 당신이 말하는, 그 '다음'에 해줘요.
이걸로 됐어요. 아주 우울하게 지내야겠다, 당신 생각이나 하면서⋯⋯.
희란:이건 거짓말은 아닌데, 나라고 세계가 네가 왔을 때 멸망할 걸 알고 있던 건 아니야. 그리고 미안한 건······.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그래, 다음에 해줄게. 그러니까 좀 잘 살고!
···그러면 안녕.
M:아마도 이어 말할 말은 '고마웠어' 였을 겁니다.
소리로 들을 수 없던 것은··· 문이 열렸기 때문에.
어떤 요괴들은 반딧불이가 되어 다음 생을 찾아간다 하던 말처럼.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당신의 주변을 날아다닙니다.
빛이 온기로 화할 때, 들리지 않을 소리가 스칩니다.
"그땐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빛을 밝혀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남은 신목은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잊지 못해, 길을 잃게 되더라도······.
어떤 시간에도 굴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을 만큼.
오늘은 이별이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인연이 끊어지는 일은 없으니, 우리는 다시 만날 겁니다.